1967년 8월 국립수산진흥원에 희소식이 전해졌다.
독도 부근 동해어장 조사를 위해 시험선 ‘태백산’호를 탄 조사단이 대규모 오징어 어장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발견장소는 독도에서 동북쪽으로 200마일가량 떨어진 공해.
이미 조업 중인 일본 오징어잡이 어선 100여척도 함께 포착됐다. 동해 최고 황금어장으로 불리는 ‘대화퇴’(大和堆)’ 어장의 등장이다.
대화퇴는 수산자원의 보고다. 1920년대 난파된 일본 해군 측량선 ‘야마토(大和)’호의 이름을 딴 이 수역은 수심이 200~400m 안팎에 불과한데다 리만한류와 구로시오해류가 만나는 덕에 오징어·꽁치·방어 등이 넘쳐난다.
한국에서는 대화퇴에서 잡은 오징어 어획량이 전체의 60%를 훌쩍 넘은 적도 있다. 그렇다고 대화퇴가 풍요만 가져다준 것은 아니다. 1976년 대화퇴 어장에서 조업하던 한국 어선 448척을 향해 초속 14~17m의 강풍과 함께 높이 10m가 넘는 삼각파도가 몰려왔다.
가장 가까운 대피처인 울릉도가 30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에 있었기에 20톤 미만의 상당수 소형어선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침몰 또는 전파 33척, 반파 12척, 사망 또는 실종자 317명. 최악의 참사였다.
위험이 있다고 황금어장을 내버려둘 어민들이 아니다. 1998년 신한일어업협정 당시 중간수역의 동쪽 한계선을 놓고 한국은 동경 136도, 일본은 134도를 주장하며 막판까지 충돌했다. 단 1도만 빼앗겨도 대화퇴 대부분을 잃는 문제였기에 합의가 쉽지 않았다.
결국 동쪽 한계선을 135도 30분으로 하고 대화퇴 수역은 별도 합의를 했지만 이것이 두고두고 불씨가 됐다. 어장의 절반을 일본에 넘겨주고 나머지 절반에서 공동조업을 해야 하는 우리 어민들로서는 어획량 감소를 만회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2005년 한일 경비정이 한국 어선 신풍호를 두고 39시간이나 대치했던 사태는 그 후유증이다.
대화퇴 어장에서 한일 경비함이 대치하는 상황이 또 벌어졌다. 한국 해경 경비함이 일본 측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조업 중인 일본 어선에 다른 수역으로 이동할 것을 요구하면서 생긴 일이다. 일본 측은 한국 해경이 익숙하지 않은 해역에서 경비활동을 하다 발생한 해프닝 정도로 보는 듯하다. 하지만 이번 대치극에서 20년 전의 양국 간 협정이 초래한 불씨를 다시 보는 것 같아 개운치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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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규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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