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 낡아 고장난 수도꼭지를 갈아끼울 생각으로 가게에 갔다가 그냥 돌아왔다. 진열된 수십개의 수도꼭지의 선택에 압도되어 우물쭈물하다가 돌아와 수도꼭지를 자세히 들여다 보고 다시갔다. 새것 하나 사는데 꽤 오래 걸렸다. 그래도 제대로 골랐는지 의심이 갔다. 결국 지금 쓰는 것과 비슷한 것으로 골라 잡았다. 익숙한데서 오는 편안함과 새것에 대한 거부감이 발동한 모양이다.
선택. 그것은 현대인의 삶에 필요악 일까 옛날 시골집 뒷뜰에 있던 우물을 생각해 보았다.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리다가 줄이 약해지면 다시 새 줄을 잡아 매면서 기뻐하시던 어머니 생각도 난다. 그러다가 아주 우물을 덮고 그위에 펌프를 설치하여 문명의 편리함을 덕보던 시절도 있었다. 어디 그뿐이랴. 서울에 오니 꼭지만 틀면 물이 나오는 공동수도를 쓰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수도꼭지가 부엌에 자리잡게 되었다. 그런 편리함을 나무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물만 나오면 되는 꼭지가 수백개의 모양 바뀜을 할 필요가 있을까. 그만큼 우리의 만족도도 높아 졌을까. 내가 골라 놓고도 제대로 골랐는지에 대한 자기의심은 여전히 남아있다. 넘처난 공급앞에서 선택은 자신감을 손상시키고 기대감의 눈높이만 높여준다. 그리고 우리의 적응성과 창조성을 갉아 먹는다.
우리의 옷장을 들여다 보자. 옷장에 늘비한 옷은 낡아서 버리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는 멀쩡한 옷도 싫증이 나서 버린다. 밤이면 등잔불 밑에서 궤매던 구멍난 양말이나 바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옛이야기이다. 구두 앞의 실밥이 터져서 걸을때 마다 입을 딱벌리는 구두를 들고 수선방으로 향했다. 말짱하게 꿰매진 구두를 보면서 한동안은 더 신을 수 있음에 얼마나 좋아하며 안심했던가. 가난한 삶에서 적응하는 힘을 키워갔다.
옛속담에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고 적응력을 높이 평가 하던 시절, 자주 직장을 옮겨다니는 사람을 좋아 하지않았다. 우리네 아버지는 한 직장에서 한평생을 보내며 충성을 다 하셨다. 직업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도 얄팍해진다. 이혼율이 점점 높아간다. 권태스런 결혼을 이어가기 보다는 새사람을 찾는다. 검은머리 파뿌리 될때까지 함께 살라는 주례사의 충고는 이제는 덕담이 아니다.
고장나면 고치고, 불편하면 개선해서 불편을 줄이는 노력은 우리의 창조력과 적응성을 키워주었다. 그 땀나는 수고후에 우리는 만족함을 배웠고 자족함을 얻었다. 그런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적응이 아니라 선택이 앞선다. 인생은 선택의 결과라는 말까지 함부로 나온다. 미국 사회는 선택할 능력만 키우면 잘 살 수있다고 가르친다. 어려움을 견디고 열심히 노력하여 얻게되는 고진감래라는 말은 낡은 골동품 가게에 알맞는다.
이렇게 불필요한 과잉 선택 속으로 우리를 밀어 넣은 자유 시장사회를 고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생활이 편리하고 풍부해진 것만은 분명하니까. 단지 그 선택의 문화가 우리에게 들고온 부작용도 함께 받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편리함의 선택이 우리의 만족도나 행복감을 좀먹어 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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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순 인디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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