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교시 수업을 듣는 작은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시간은 아침 7시. 아이를 내려주고 학교에서 나와 유턴을 하면 편안한 소파가 있는 따뜻한 집으로 가는 길이고, 우회전을 하면 우리 동네 호수로 가는 길이다. 파킹랏을 빠져나오는 30초간 집으로 갈 것인가, 호수를 향할 것인가 갈등을 한다. 매일 그렇게 고민을 하는데 특히나 날씨가 쌀쌀한 날에는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지지만 가급적 차를 오른쪽으로 돌리려 노력한다. 그래서 매일은 아니어도 자주 호수로 간다.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엘리자베스 호수가 있고 호수를 따라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한동안은 해질녘에 호숫가로 나가 운동 겸 산책을 했었는데 아이가 일찍 학교를 가니 등교시키고 바로 그곳으로 가게 된다.
이른 아침 호수는 내게 ‘아침’의 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쌀쌀한 날에는 영화처럼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그 안에서 날아오르는 새들의 아름다운 날갯짓을, 맑은 날에는 해돋이의 찬란함을, 안개가 자욱한 날에는 동양화 같은 차분하고 고즈넉함을, 그리고 흐린 날에는 무거운 구름 아래 한없이 평화로운 물결을 보여준다.
베이지역에 눈이 내린 다음 날, 기온이 30도대로 뚝 떨어진 아침, 아이를 학교에 내려주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른 채 호수로 향했다. 하얗게 서리가 내려 눈밭을 보는 듯한 호숫가. 오랜만에 코끝이, 그리고 손끝이 시려오는 상쾌한 겨울 아침. 떠오르기 직전의 햇무리와 공기방울마다 머금은 노란 태양빛이 나를 감싼다. 온 천지가 노란빛이다. 그 빛은 산소처럼 내 숨 속으로 스며들고, 걷는 길과 양쪽 풀밭에 내린 서리 속에서 다이아몬드처럼 크리스탈처럼 빛났다. 마치 다이아몬드 가루가 뿌려진 것 같은 몽환적인 그 길 위에서 나도 빛인 듯 걸었다.
미션픽 위로 태양이 떠오르니 보석처럼 빛나는 길 위에 나와 내 그림자, 그렇게 둘이었다. 노란 태양빛 아래 내 그림자가 서리 내린 반짝이는 길 위로 길게 드리워졌다. 혼자였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좋아하는 비올라 연주곡이 나오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따스한 태양빛 안에서 잠시 나를 놓고 걸었다. 빛 속을 빠져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까지 그 빛이 남았다. 따뜻한 집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으면 갖지 못했을 큰 행복이다. 작은 시작이, 작은 이겨냄이 주는 행복은 크다. 소소하지만 하루를 살아가는 큰 힘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는 새롭게 아침의 문을 연다. 남은 인생 중 오늘이 제일 젊은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이승희(섬유조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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