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의과대학에 막 들어갔다. 예전에 쓰던 책들을 집에 들고 와서 정리하고 있는데 책갈피에 끼어 있던 종이 1장이 떨어졌다. 아들의 이력서였다. 아들의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외에 언제부터 언제까지 어디서 무슨 일을 했었다는 내용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아들이 고등학교 때 학교를 다니면서 일을 하고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엄마, 여러 명이 원했는데 제가 뽑혔어요. 학교 수업이 끝나면 그곳에서 일하다 집에 올 거에요.” “아서라. 고등학교 1, 2학년 때 성적이 중요하다고 들었어. 네가 용돈이 필요하면 엄마가 줄 테니 일할 생각 아예 하지 말아라.” “그렇지만 전 일하고 싶어요. 제가 학교 공부도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 유지할 테니까 일하게 해주세요.”
학교 성적이 떨어지면 그만두게 하려고 했는데 예상과 달리 아들은 좋은 성적을 유지했고 대학 입시로 보는 SAT 영어도 만점을 받아왔다. 최저임금 받으며 전화받고 장부 정리하며 도와주는 일인가 했다. 그런데 이력서의 자세한 근무 내용이 나를 놀라게 했다. 다들 퇴근한 후 혼자 남아 책상을 닦았고 교실바닥을 쓸었고 쓰레기통까지 끌고가 주차장 밖에 있는 큰 쓰레기통에 버린 내용이 들어 있었다. 내 아들이 청소부로도 일했단 말인가?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되어도 어린아이로 보이는 엄마에겐 고등학생 시절의 내 아들은 보호받아야 할 소년이었다. 밤늦은 시간에 그런 일을 하다니? 깡패라도 지나가다 행패 부렸으면 어떻게 했으려나 싶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4년을 다닐 때였다. 아들이 일을 하며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지 전혀 몰랐다. 의과대학에 진학하고자 의사를 따라다니며 자원봉사하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력서에는 대학 시절 스시 만드는 일식당에서 웨이터로 일한 경력이 있었다. 귀하게 생긴 내 아들이 웨이터로 시중드는 일을 했다고 생각하니 좀 속이 언짢았다. 불현듯 내 체면만 생각하고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고 남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고 일을 한 아들이 대견스러워졌다. 그 많은 지원자를 뚫고 아들이 의과대학에 합격한 것은 최저임금을 받으며 성실히 일한 아들의 이력서에 감동받은 건 아니었을까.
<김명수(버클리문학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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