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간다의 적도에 허술하지만 관광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적도의 가시적 선을 그어 놓고 북반구, 남반구, 적도 위에서 각각 물이 어떻게 빠져나가는지를 비교 관찰하게 한 것이다. 양동이에 구멍을 뚫어 배수구를 만든 후 위에서 물을 부으면 남반구와 북반구에서 물이 반대 방향으로 돌며 빠져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적도에서는 물이 돌지 않고 그냥 아래로 빠져 나간다. 일명 ‘코리올리 효과’라는 물리적 현상을 몇 발자국 안되는 거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북반구와 남반구에서는 물이 그곳에서 관찰 가능한 한 방향으로만 빠진다고 생각하겠지만, 적도에서는 물이 세가지 방식으로 빠진다고 생각한다. 이는 단지 물리적 현상만 아니라 사고의 유연성이나 삶의 다양성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대변하는 듯하다.
1994년 4월, 세계의 눈이 아프리카를 주목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르완다의 집단 학살이다. 후투족에 의한 투치족의 대량 학살로 100일 동안 100만명이 살해당했다. 이는 1일에 1만명, 1시간에 400명, 1분에 7명이 죽은 것과 같은 수치라고 한다. 르완다는 물론 인근 나라에도 엄청난 충격과 후유증을 남긴 사건이다. 우리가 섬겼던 신학교에 동부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온 다양한 학생들이 있었다. 후투족과 투치족도 있었는데, 집단 학살 때 가족을 잃거나 피해를 입은 학생들이 상당수였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한 캠퍼스 안에 대립된 부족에서 온 학생들이 함께 있어도 될까 싶은 선교사들의 우려와는 달리 별탈없이 잘 지내는 그들의 모습이 신기하고 놀라웠다. 우리 문화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융화가 잘되는 아프리카 사람들에 비해 우리 민족은 아군과 적군, 흑과 백을 명확히 구별하고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내편에 대해서는 강항 응집력을 상대편에 대해선 배타적인 태도를 보인다. 때론 이해가 달라 편이 나뉘기보다 편을 가르기 위해 이해를 달리하는 것 같기도 하다.
몇 발자국 거리인 북반구와 남반구의 물이 반대로 빠지는 것이 신기해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질문하는 나에게 직원이 되물었던 말이 생각난다. “왜 그러면 안되냐?”고. 내가 가진 사고의 벽에 유연성이 필요함을 깨닫게 해준 순간이었다. 지식과 상식이라고 믿고 있는 벽돌이 편견과 고집이라는 시멘트에 들러붙어 내 안에 요지부동의 벽을 만든 건 아닌지….잠시 적도의 교훈을 되새겨본다.
<박주리(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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