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알게 된다. 도시 전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소호하우스 베를린에서 알게된 보임이다. 7층 높이의 백화점 건물로 지어졌다는데 보이면 얼마나 보일까 반신반의하며 루프탑 레스토랑에 들어선 순간 베를린 전체가 발 아래 있었다. 베를린의 상징인 텔레비전타워마저 하나의 배경이 되고 있었다.
연합군의 폭격으로 도시 곳곳이 파괴된 모습으로 남아있는 베를린의 문화적 랜드마크(1 Torstrasse)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본부로 사용되었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던 1989년을 기점으로 20년 넘게 비어있다가 2010년 멤버십 클럽 ‘소호 하우스 베를린’이 문을 열면서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는 공간이다.
역사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건물이 많은 베를린이라는 도시에서 ‘소호하우스’ 건물 역시 복잡한 과거사를 갖고 있었다.
원래 유대인이 소유했던 이 건축물은 1928년 독일의 반표현주의적 전위예술운동 ‘신즉물주의’ 스타일로 건축된 7층 백화점이었다. 1933년 1월 국가사회당(나치)이 권력을 잡으면서 백화점의 유대인 소유주들이 주주들에 의해 밀려났고, 요나스 백화점은 베를린 미테 지구 알렉산더 광장으로 이전을 했다. 빈 건물은 나치 국가청소년단에 팔렸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히틀러유겐트를 이끈 아르투어 악스만의 조직본부로 사용되었다.
1945년 동독이 동 베를린을 소련에 넘겨주면서 이 건축물은 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사용했다. 1950년대 말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기록을 보관한 동굴 같은 공간인 마르크스-레닌주의 연구소로 개조됐고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원래 유대인 소유주의 자손들에게 역무배상이 되었다.
이런저런 과거사로 인해 20년 넘게 비어 있던 이 건물이 영 프로페셔널의 아지트로 통하는 소호하우스에 의해 거듭났다. 소호하우스는 예술과 패션, 영화와 미디어 종사자들의 프라이빗 사교클럽 답게 각 도시마다 역사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거나 독특한 컨셉의 인테리어가 현 시대의 트렌드를 엿보게 하는 공간이다. 멤버십 전용이라 접근이 쉽지 않다는 약점이 있지만 역사와 문화예술을 등한시하는 현 세대에게 꼭 필요한 공간이다.
통일 30년을 맞은 독일, 금 하나 사이로 갈라졌던 동 베를린과 서 베를린의 과거사를 보면서 ‘음악은 사람을 치유한다’고 자신하던 구스타보 두다멜 LA필 지휘자를 떠올렸다. 베네수엘라처럼 사회가 불안정할 때 음악이 분노와 불안을 치유하는 다리가 돼야 하고, 그것이 예술가들이 해야 할 역할이라는 그의 신념을 이해하게 되었다. 두다멜 지휘자에게는 음악이 그렇듯 다른 누군가에게는 미술, 영화, 패션, 그리고 역사 연구가 치유의 도구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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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선 사회부 부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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