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쩍 마르고 영 속이 좋지 않다는 아버지를 모시고 불안한 마음으로 동네 병원을 찾아갔다. 가뜩이나 마다하는 아버지를 겨우 설득해서 온 걸음인데 의사가 아버지의 복부 초음파를 찍는 내내 간호사는 자꾸 나를 쳐다봤다. 올 것이 온 건가 초조한 마음으로 의사의 입만 쳐다보고 있는데 “아버님 이거 들고 검사실 가서 채혈하시고 따님은 잠깐 남으세요” 한다. “아버님이 간암 말기입니다…정확한 검사를 해봐야겠지만 길어야 3개월 남았습니다.” 역시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지를 않았다. 암이라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큰 병원으로 가자고 하니 난 괜찮다 하셨다. 돌아가실 때 돌아가시더라도 무슨 병인지는 정확히 알고 가셔야 할 것 아니냐며 울며불며 몇 일에 걸쳐 겨우 설득해서 서울의 큰 병원으로 갔다.
입원을 해서 이런저런 검사를 마치고 난 후 담당의사가 하는 말이 “암이 전신에 다 퍼져서 어떤 치료도 무의미합니다. 현대의학으로는 이미 손을 쓸 수가 없는 단계입니다” 아무리 본인이 치료를 거부하고 있다지만 실낱같은 희망이 왜 없었겠는가? 아버지의 무너지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 난 의사에게 아버지는 틀림없이 마다하실 것이니 형식적으로라도 아버지에게 항암치료를 권해 봐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요즘은 약이 좋아 연세드신 분들도 크게 힘들지 않고 악화되는 것을 막아줍니다” 내가 부탁한 것 이상으로 친절하게 잘 권해 주었지만 아버진 예상대로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어떤 치료도 안받겠습니다. 난 이대로 죽어도 좋아요.”
퇴원 후 집 근처 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던 아버지가 갑자기 머리 좀 깎자 하셨다. 오랜 세월 아버지의 이발을 맡아 주었던 분을 병실로 모셔왔다. 그분도 마지막을 직감했는지 빗과 가위를 들은 손을 달달 떨면서 아버지의 머리를 깎아 나갔다. 떨어지는 하얀 머리카락은 흡사 가로등 불빛 아래 흩날리는 눈발 같았다. 숨소리조차도 들리지 않는, 희미한 불빛 아래 아버지의 이발은 이승에서의 마지막을 고하는, 적막감이 감도는 엄숙한 의식이었다. 그 처연한 장면은 심정을 고한들, 눈물을 흘린들 생로병사, 희로애락의 인간사 피할 수 없는 과정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곧 맞닥뜨려야 할 어찌할 수 없는 예감된 이별에 얼마나 울었던가…
아버지는 그 의식을 치른 다음 날, 한 많은 세상을 등지고 ‘나비가 되어’ 푸른 창공을 훨훨 날으셨다.
<정윤희(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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