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변화·환경보호 현대산업 화두로, 석탄 뒤덮쳤던 마을 바람개비 가득
▶ 열악한 생활·질환 대물림 절대 반대
이들은 화석연료의 헤택을 받고 자랐다. 하지만 전부 재생에너지 직장에서 일한다. 크리스 라일리는 석탄을 캐는 광산 마을에서 자랐다. 지금은 석탄 사용을 급감시키는 비즈니스를 창업해 운영하고 있다. 리 밴 혼의 아버지는 탄광에서 일했다. 현재 그의 일터는 300피트 고공의 풍력 터빈 위에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세대 간 직업 변화와 맞물려 에너지의 변천 과정을 소개하는 특집을 실었다.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공급원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의 특집 기사에 소개된 인물들은 모두 부모나 조부모, 주변 이웃이 평생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 관련 업종에서 일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 본인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환경 보호에 대단한 사명감이 있어서가 아니다. 오늘날 미국이라는 삶의 터전에서 풍력이나 태양광 에너지 분야가 석탄이나 석유같은 화석연료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은 일인 것이다.
크리스 라일리는 유타주에서 ‘석탄의 나라’라고 불리는 크라우슨에서 성장했다. 마을 인구래야 163명에 불과했고 게다가 그중 절반은 성씨가 라일리였다. 한마디로 라일리 집성촌이었다. 싱글맘이 꾸려가던 집안은 가난했다. 마을 교회와 푸드스탬프의 도움을 받아 생활했다.
그의 증조부는 영국의 탄광에서 일하다 미국으로 이민왔다. 올해 94세인 할아버지 로버트 라일리도 평생 탄광에서 일했다. 그리고 아버지 마이크 라일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크리스는 집안에서 처음으로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다. 당연히 그는 그곳 탄광에 취직하지 않았다. “가족들은 타운을 벗어나는 길을 찾으라고 저를 재촉했습니다.”
해군에 입대한 그는 초계함에서 지휘관을 지내고 전역했다. 그리고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에 들어갔다. 대학원을 졸업한 뒤 크리스는 몇몇 친구와 함께 ‘구즈만 에너지’라는 회사를 세웠다. 시골 지역은 화력발전소와 지역 전력회사가 공급하는 값비싼 전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보다 싸고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을 대안으로 제시해 외딴 시골 커뮤니티를 돕고 기존 에너지 산업의 판도를 바꾸는 게 회사의 목적이었다.
기후 환경변화와 투쟁을 벌이라고 작은 마을들을 부추기는 영업 전략은 물론 쓰지 않는다. “그건 이상에 불과해요. 그저 수학일 뿐이죠.” 할아버지 집에서 온가족이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그는 처음으로 사업 계획을 펼쳐 보았다. 사업을 하다 보면 고향 마을 클라우슨 같은 작은 타운은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정부의 대기오염 감소 정책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었지만 모두 크리스의 제안은 받아들였다.
루이스 다빌라는 베네주엘라 출신이다. 가족과 친척들은 정유회사에서 일했다. “아버지는 남미와 카리브해 지역의 정유소를 돌며 시설을 개선하는 일을 했습니다. 모두 정유회사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삶은 행복하지 못했다. “하루 종일 가스를 들이마셔야 했고 그게 얼마나 나쁜 건지 알게 됐습니다.”
세톤홀대학교에 다니며 루이스는 기후 변화에 대해 배우게 됐다. “인생이 바뀌었죠. 가족들을 기름 속으로 들이미는 짓은 할 게 아니었어요.” 그는 기후 변화를 다루는 일을 찾아 나섰고 유엔(UN) 기후변화국에서 파리 기후협정을 국제적으로 지원하는 업무를 하게 됐다.
그곳에서 9년을 근무한 뒤 기후 협정을 현장에서 실행하는 일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태양광 에너지 기업중 메이저 컴퍼니의 하나로 꼽히는 ‘선런’에 입사한 루이스는 지금은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다. 회사는 곧 과거 스탠다드 오일 컴퍼니가 사용하던 빌딩으로 입주할 예정이다.
제스 버니는 웨스트 버지니아의 밍고 카운티에서 자랐다. 애팔라치 산맥의 ‘석탄의 나라’ 깊숙히 자리잡은 오지 산골이다. 당연히 그녀도 그곳의 수많은 주민들처럼 광산회사에서 일했다. 그러다 직업훈련 단체에서 훈련을 받고 직장을 바꿨다. 지금은 태양광 전력과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도록 빌딩을 개조하는 작업을 시행 중이다. “할머니가 탄광에서 일하지 말라고 간청하셨어요.” 그녀를 키워 주었던 할머니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거나 병에 걸리는 모습을 목격했다. “할머니는 저보고 할아버지처럼 부셔저 나가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환경보호를 위해 변화를 선택한 건 아니다. 아무런 경제적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가족과 자녀를 끝까지 돌보겠다는 의지가 그녀를 새로운 길로 이끌었다. 그 여정이 자연스럽게 탄광에서 태양광으로 바뀐 것이다.
텍사스 스탠튼 근처에는 높이가 300피트에 달하는 풍력 발건기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드넓은 대지 위에 유정이나 펌프 등 원유를 끌어내던 흔적이 곳곳에 널려 있다. 바로 이곳이 미국 전체에서 두 번째로 원유를 많이 생산하는 곳이다.
이제 텍사스는 풍력 에너지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곳이기도 하다. 제이크 톰슨은 이 지역 풍력 발전소 매니저다. 해병대에서 6년 동안 근무하는 동안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쿠웨이트에도 파병됐다. 그는 고향에 돌아오면 아버지처럼 당연히 정유회사에서 일을 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석유회사에서 인원 감축과 재고용을 반복하며 풍파를 겪은 아버지는 아들에게 전혀 새로운 제안을 던졌다. 바로 ‘바람’이었다. 그의 고향 스나이더는 거의 완벽하게 풍력 발전기로 둘러싸여 있다. 처음에는 사다리를 타고 발전기 꼭대기까지 올라가야 했다. “군 시절 닦은 체력이 여전했거든요. 올라가는 건 어렵지 않았어요.”
미란다 바나드는 유타주의 조그만 광산 마을 출신이다. 크리스 라일리가 자란 곳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도 안 걸린다. 라일리처럼 그녀의 가족도 대대로 광부 일을 이어왔다. “일종의 패밀리 비즈니스인 셈이죠.” 할아버지는 70년대에 광산을 알리는 광고에 모델로 나오기도 했다.
그녀는 현재 태양광 에너지 회사의 마케팅 담당 부사장이다. 그녀의 사무실에는 광원 헬밋을 쓴 할아버지의 사진이 자랑스럽게 달려 있다. 에너지 원천은 다르지만 갈등은 없다. “다 비슷한 걸로 보고 있어요. 우리 모두 에너지 비즈니스에 종사하는 것이죠.”
리 밴 혼은 펜실베이니어 북부 시골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광산에서 일했다. 초등학교 길 건너편에 석탄 정제 공장이 있었다. 흰색 페인트로 칠해졌지만 석탄 먼지로 늘 새까맣게 덮혀 있었다. 마을은 온통 검정 투성이었다.
전력회사에서 23년을 일하다 지난 2006년 풍력 발전회사로 직장을 옮겼다. 석탄 마을이던 곳이 이제는 풍력 발전기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발전기 위에 올라 계곡을 바라보면 광산 터와 흔적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말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차를 몰고 직장에 가다보면 광산으로 파헤진 땅들이 보이죠. 하지만 산 위에는 풍력 발전기들이 서 있는 게 보입니다. 한눈에 들어오지만 완전히 서로 다른 광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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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원 객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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