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떠나 먼 여행 끝에 아프리카에 진입하던 첫날, 설레임과 호기심으로 가슴이 콩닥거렸던 기억이 난다. 적도의 태양은 어떻게 생겼을까, 아프리카의 공기는 어떤 촉감일까,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까. 마치 외계 행성에라도 간 듯한 심경이었던 것 같다. 공항에 검은 피부의 사람들이 북적거렸던 것, 더운 열기가 공기층을 덮고 있는 것, 제법 따가운 햇볕 등을 제외하고는 의외로 낯설지 않은 자연 환경에 약간 실망스럽기도 했다. 도로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 흙 벽돌 집들, 도로 곳곳에 움푹 패인 웅덩이들로 차가 덜컹거리는 소리, 비포장 도로를 달릴 때면 뿌연 흙먼지들이 차의 꼬리처럼 붙어 다니는 모습 등은 옛날에 어디선가 본 듯한 아련한 추억을 연상시켰다.
어린시절 한국 시골의 모습이 그러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간 듯하다. 장소 이동만으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문명세계에서 생필품으로 여기는 많은 가전제품들 없이도 일상 생활이 가능하다. 의식주와 관련된 문명의 옵션들을 벗고, 기본만으로도 족하게 살아간다. 경쟁과 성공이라는 거미줄 망 안에 갇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는 문명 사회의 긴장감이 미치지 않는 곳이다. 일상의 템포가 느려진다. 문명과 자연이 서로에게 리듬을 맞추며 조율하는 듯한 세상이다.
그러고 보니, 사회가 개발되고 발전한다는 것이 문명과 자연의 시소놀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이 우위를 점유하던 때, 인간은 자연을 피조물로 여기기보다 창조주와 동일시했다. 자연은 두려움과 숭배의 대상이었다. 문명 개발이 상승세를 타면서 자연은 문명을 위한 자원과 도구로서의 가치를 능가하지 못했다. 반면, 문명은 인간의 삶을 유익하게 하는 수위를 넘어 숭배의 대상이 되어갔다. 돈과 기술은 더 이상 삶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삶의 목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인간은 자연의 품에서 태어나 자연과 교감하면서 생명과 활기를 누린다. 그런가 하면 인간 내면에 꿈틀거리는 창조성은 문명 개발의 원동력이 되어 인간의 삶에 편리함과 효율성을 부여했다. 결국 자연과 문명은 서로 모순되거나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둘 다 인간의 유익과 행복을 증진하는 놀라운 선물이다. 문명의 이기들이 한걸음씩 뒤로 물러나 있는 빈 공간에 삶의 여유와 풍류가 잔잔히 차오르는 그런 곳에서 인간다움의 행복도 짙어지는 것 같다.
<박주리(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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