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간다 생활 5년만에 가정에 위기가 찾아왔다. 남편과 큰아이가 동시에 말라리아에 걸린 것이다. 우간다는 에이즈 30%의 통계를 갖고 있었지만, 실제 치사율이 가장 높은 병은 말라리아였다. 10살인 큰아이는 한시간 반 동안 코피를 목으로 삼키고 두 콧구멍으로 쏟아내는데 저러다 죽겠구나 싶었다. 코피가 멎었나 싶더니 시커먼 것들을 토해 놓았다. 목으로 넘긴 코피였다. 엉망이 된 주변을 정리하고 아이를 추스르고 나니 이번엔 배가 아프다고 데굴데굴 굴렀다.
고통스러워하는 자식을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어미의 마음이 참으로 참담했다. 배를 주무르며 이 고통을 나에게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데, 아이가 겨우 입을 떼며 말을 건넸다. 평생 처음 들어보는 유언을 10살 아들에게서 듣는 순간이었다. “난 이제 아무래도 죽을 거 같아요. 내가 죽으면 이 장난감은 동생에게 주고, 저 장난감은 (누구)에게 주세요.”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말이지만, 그 당시에는 가슴이 쿵 무너져 내렸고 배를 주무르던 손끝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예상하지 못한 거대한 파도가 덮쳐 오는데 무기력하게 바라보고 있는 절망적인 순간이었다.
사춘기 이후로 난 ‘어떻게 살아야 할까?’ 보다 ‘어떻게 죽어야 할까?’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이순신 장군의 삶이 불멸의 감동을 주는 이유도 그의 죽음 때문이라고 여겼다. 죽음 앞에서 죽음을 능가하는 가치를 살아내는 사람,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했고, 선교지에서 부딪히는 어떤 어려움도 기꺼이 감당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난 것이다. 나의 죽음이 아니라 가족의 죽음에 대한 준비이다. 책상 앞에 가족사진이 있었다. 바나나 나무 앞에서 온가족이 활짝 웃는 모습이었다. 손으로 남편과 큰아이의 얼굴을 가려 보았다. 나의 미소가 얼마나 쓸쓸하고 슬퍼 보이던지……
인간은 자기가 어찌할 수 없는 한계상황(죽음, 질병, 고뇌 등)에 대해 도피하거나 외면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의 시선을 돌린다고 다가오는 실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한번밖에 없는 기회를 살아가고 있다. 남아있는 인생 여정이 얼마이건 앞으로 펼쳐질 인생의 끝을 바라보고 준비하며 그 길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창조자의 즐거움에 동참하기를 소망한다.
<박주리(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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