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타 아르헤리치는 젊은 나이에 비엔나, 부조니, 쇼팽 콩쿨에 입상해서 피아니스트의 전설, 여제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유튜브는 그녀의 사오십 대 연주 실황과 칠십대의 요즘 모습을 함께 볼 수 있게 해준다. 기다랗던 검은 머리채가 백발 성성한 모습으로 바뀌었지만 지휘자를 힐끗 바라보는 샤프한 눈매, 선율을 따라 우물거리는 입술, 강렬한 터치와 열정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녀로부터 40여년 지난 80년대에는 유독 훌륭한 여성 피아니스트가 많이 출생한 것 같다. 아이가 훌륭한 음악가가 되기를 원하면 이름부터 잘 지어야 하나보다. 일찌감치 피아노 신동으로 출발한 손열음은 이름에서부터 빛나는 소리를 빚어 낼 아이임을 느꼈다. 대관령 음악제 감독으로 바쁜 요즈음도 그 소리는 여전히 대한민국 피아니스트의 자존심이다. 얼마나 영롱하고 힘있고 감성이 풍부한지.
피아니스트가 영화배우처럼 아름다우면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는 것 같다. 나도 그루지아 출생의 카티아 부니아티쉬빌리를 좋아하지만 내가 무엇에 반했는지 알 수 없다. 짧은 머리의 섹시한 모습인지, 소리인지, 그 모두인지. 남성들은 가슴이 드러난 연주복을 기대하겠지만 나는 카티아가 몸을 모두 감싼 긴 드레스를 입고 나올 때가 좋다. 클래식한 에스 라인 몸매는 건반 앞에 금방 깊은 바다에서 인어공주가 도착했나, 하는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중국의 유자왕도 그녀의 튀는 미니스커트를 좋아하는 것인지 발랄한 연주를 좋아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마 둘 다 일 것이다. 프로코피에프를 연주하는 율리아나 아브제예바도 빼놓을 수 없다. 야성미를 더하는 연미복에 체격에서부터 뿜어 나오는 파워와 스케일이 시원하다. 40여년 만에 쇼팽 콩쿨에 우승한 여성이라며 가끔 여제라고 불리는 것을 본다.
그러나 한 시대에 황제가 두 명일 수는 없는 법. 피아노의 전설적인 여제가 아직 살아있는데 감히 여제라니. 올 봄 서울로 여제가 귀환한다. 누군가가 아르헤리치의 연주를 듣는 것은 언제나 역사적인 순간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했으니 또 하나의 역사적인 순간이 탄생하는 셈이다. 2019년 벳부 아르헤리치 뮤직페스티벌 in Seoul에서 임동혁과 듀오 레퍼토리도 꾸린다고 한다. 90년대에 서울에서 피아노 현을 끊어버린 그 정열이 칠십대에는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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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주(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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