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1학년 학생들만 보아도 그 속을 뻔히 들여다볼 수 있지만 2학년만 되어도 본인 나름대로 방어적 기질이 생겨 읽기 어려워진다는 교수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교수님을 1학년 때 만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너무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어설프게 그려 넣은 아이라인 만큼 어설픈 동공지진 공격과 가벼운 농담에도 당황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홍당무가 되어 혼자 씩씩되었던 갓 스무살의 찌질함을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하 생략된 진정 숨기고 싶은 나의 무궁무진한 찌질함에서 완벽히 해방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은 그렇지 않은 척하는 방법을 어느 정도 터득했기 때문이다. 결국 뒤돌아보면 별것 아닌 나의 울퉁불퉁한 감정으로 타인을 괴롭히지는 않았나, 나의 다듬어지지 않은 모습이 웃음거리가 되지는 않았나 두려워해보았다. 그런 두려움이 쌓여 조금씩 숨기고 아무렇지 않다고 자신조차 속이며 마땅히 내보일 만한 모습만 드러낼 수 있는 내공을 쌓아간다.
이렇게 쌓아가는 과정에서 나는 꽤나 자주 어리숙한 과거를 회상하며 미소를 짓는다. 사실 투명하다는 것은 얼마나 멋지고 용기 있는가? 내일의 두려워하는 나를 알지 못하는, 오늘의 무모하고 어리숙한 내가 어쩌면 가장 진실된 내가 아닌가? 아마 많은 이들은 그런 진실됨과 순수함을 높이 산다고 말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런 막연한 동경과 학습되어온 두려움 사이에서의 갈등을 예술의 세계로 가지고 오기도 한다. 간단한 예로 영화 ‘버닝’에서 종서를 연기한 유아인과 벤을 연기한 스티븐 연의 관계를 들어보겠다. 종서는 매사 미숙하고 원초적이며 숨길 수 없는 표정의 하수 같아 보이지만 매사 능수능란하고 예측 불가능한 표정과 행동으로 앞서있는 것 같은 벤의 질투와 동경이 대상이 되기도 한다. 관객들은 이 불편하고도 흥미로운 두 인물의 관계를 곱씹으며 본인의 과거와 현재를 떠올리기도 할 것이며 특정 인물을 편애하기도 할 것이다.
정제되지 않은 인물과 당최 표정을 알 수 없는 흥미로운 인물은 예술의 힘을 빌려 같은 시공간에 존재하며 자유롭게 소통한다. 우리는 과연 어떤 관계를 창조해낼 것이며 누구를 죽일 것인가? 우리는 과연 진정으로 순수함과 투명함을 동경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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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영씨는 UC버클리에서 경제학과 연극학을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하는 일을 하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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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영(UC버클리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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