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오후는 어쩐지 날씨가 화창하다 못해 뜨겁기까지 했다. 일기예보를 미처 보지 못했던 나는 아직도 한겨울인 것마냥 윗옷에 겉옷을 더 껴입었다. 내 옆의 친구는 옷으로 날씨를 증명해보이듯 반팔과 반바지로 그 더위에 승복했다. 환절기 때라 그런지 날씨를 가늠하지 못하고 날씨에 비위 맞추듯 나는 그 온도에 맞게 입으려 했지만, 그날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시원하게 옷을 입고 온 그 친구를 내심 부러워했다. 그렇게 이른 오후가 지나고 저녁이 돼서 그 친구를 또 보게 되었을 때는 낮에 느꼈던 그 더움에 무덤덤해질 만큼 춥고 쌀쌀했다. 그런 오후가 돼서야 겹겹이 입은 내 옷차림이 알맞게 되었다. 그때 나는 느꼈다. 따스한 햇살에 두껍게 옷을 껴입은 나는 그 시기엔 어긋났을지 몰라도 쌀쌀한 저녁에 맞는 사람이었음을.
이사를 가던 어느 날 엄마와 옷정리를 한 적이 있다. 유행이 다 지난 옷을 버리려고 하자 엄마는 유행은 돌고돈다며 두었다가 나중에 입으라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그 버리려다가 말은 청자켓에 청바지, 일명 복고풍이 물씬 풍기는 청청차림으로 학교에 간 적이 있다. 때 지난 맵시에도 각광을 받는 옷차림이었다. 복고지향주의라고 지칭되는 문화로 인해 옛날에 유행했던 옷들과 오락기구들이 지금에도 많은 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즉, 현재에 과거를 가져와 또 한번 유행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때 나는 또 한번 느꼈다. 언젠가 유행이 돌고돌아 결국 내가 유행이 되는 때도 올 거라고, 지금은 철 지난 혹은 아직 이른 사고방식일지라도 이 사회가 나를 알아봐주는 때도 있을 거라고 여겼다.
사람들이 늘 말하듯 모두에겐 때가 있다. 내 과거들이 나를 현재로 밀고 내 현재가 미래로 나아가도록 이끄는 과정에서 한번쯤은 세상이 내 아귀에 맞을 때가 올 것이다. 내 고집이 담겨 있는 생각들이 외면받더라도 고장나 멈춰진 시계가 하루에 한번쯤은 정확한 시간을 가리키듯이 말이다. 그렇게 내가 나이가 들어 머리에 든 것이 많아질 때에도 복고가 유행이듯 내 젊은 시절의 때 지난 사고방식도 미래에서 누군가는 그리워할 날이 오겠지라고 여겼다. 한편으로는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명성이 자자한 고서들처럼 어느 시대에도 걸맞는 생각을 하길 바라지만, 나는 지금 나의 때를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다.
<김예은(UC버클리 학생)>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