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왔단다. 아니 청주였다던가. 어떻든 친한 친구였을거다. 그러니까 그 먼 길을 마다하고 찾아와서 가지도 않고 달라붙어 일일이 간섭이니. ‘참 미국사회는 질서가 있다.’ 며칠을 같이 다니다 보면서 한다는 말이다. 어디를 가나 무엇을 하나 쌈박질 안하면서 너나할것없이 마냥 묵묵히 차례를 기다리는 그런걸 보면서 하는 말이다.
(질서 좋아하시네.) 기다림의 짜증을 생활과 연결시켜 놓지않고 옆에서 보기만 하니까 하는 말일거다. 은행도 그렇고 그로서리 가게에서도 그렇다. 괜찮다고 소문난 식당 앞에는 어김없이 기다리는 사람들 행렬이 보인다. 마냥 기다린다. 그러나 요즘은 셀폰 덕분에 불평할 시간이 없다거나 아니면 줄었다고나 할까.
그래 은행에서 그 잘난 삐쩍 마른 수표 한 장 달랑 입금하는데 10분이 걸렸다고 하자. 그런데 그걸 입금하고 나오는데 0분이 걸렸다고 하면, ‘그 10분 동안 뭐가 달라질까?’ 성인군자 같은 소리만 한다.
DMV 경험을 하고도 이런 소리를 할까? 한 두 달 전에 인터넷으로 날짜와 시간을 예약하고도 막상 시간 맞추어가도 또 기다려야하는 문명. 남부 멕시코와의 경계선에서 난민들이 기다리는 문명은 아마 영원이라 고해도 될 거다.
전화로 어느 전문가와 예약을 해보자. 금방 전화를 받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뭐 요즘 메뉴가 바뀌었으니 좀 신경을 써서 어쩌고 저쩌고 한다. 이거면 몇 번 번호를 누르고 저거면 이번호 누르고 이렇게 한동안 하라는 대로 따라한다. 그러다보면 이게 사람이 아니구나 하는걸 알게 된다.
어떤 때는 로봇의 지시를 무시하고 우선 0번을 누르고 본다. 와, 직통. 사람과의 대화가 가능해질 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다시 메인 메뉴로 가라는 호령이 떨어진다.
정확히 15분이 걸린 때가 있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닌 두 번이나. 로봇이 나온다. 조금만 기다리라고 한다. 그러면 누군가가 곧 전화를 받을 거라고. 멋없는 음악과 앵무새 소리를 듣고 음악을 듣고 기다림과 기다림 속에서 한동안 있으려니 또 로봇이 나온다. 이렇게 기다리는 것 보다 전화번호와 이름을 남기면 누군가가 전화를 해주도록 하겠다고. 아니면 더 기라 다리겠냐고. 옵션이 생긴 거다.
그리고 그 옵션이 상대방에 의해서 파괴된다. 옵션은 내건데 저쪽에서 주고 저쪽에서 부순다. 전화번호와 이름을 남기란다. 그러면 24시간이내에 연락을 하겠다고. 꼭 15분이 걸렸다. 전화기에 그 기록이 보인다. 저쪽과의 연락은 48시간 이내로 이루어진다.
‘까짓것 우리도 로봇을 만들면 되는것 아닌가?’ 15분을 전화통에 신경 쓰는 게 안 돼 보였는지 촌사람이 말한다. ‘자존심 상하게 로봇과 실랑이 하지말고 우리도 로봇을 만들어 로봇끼리 상대하게하면 되는 게 아니냔 말야.’
말은 좋다. 시나리오도 좋다. 자 로봇이 전화한다. 로봇이 받는다. 서로가 자신들 매스터의 일과를 보면서 시간을 맞춘다. 로봇끼리니까 신속하게 일이 진행된다. 몇월 몇일 몇시. 마스터 일과에 맞추어 예약끝. 알렉사나 시리를 조금만 훈련시키면 될거다.
‘아가씨 목소리가 너무나 아름다운데 인물은 더 아름답겠지요?’ 일을 끝내고 넌지시 한마디 던진다. ‘그거 미투라는거 아시죠?’ 로봇이 대꾸한다. 목소리에 쇠가 끼었다. ‘...아무리 기계끼리의 희롱이래도 마스터한테 그 영향이 간다는 거쯤은 아셔야죠.’
건강보험 제도가 세계에서 가장 잘 되고 있는 나라중 하나라는 대만에서는 예약문명 이라는 게 없단다. 보험카드만 있으면 어느 병원이건 어느 의사건 필요한때 아무 때나 찾아만 가면 척척 이란다. 여기 미국 땅에서도 그게 가능할까...? 노웨이 호세겠지. 그러면 질서가 무너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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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선/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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