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주 어린시절부터 부모님의 시시콜콜한 부부모임에 열심히 따라다녀야만 했다. 이유인즉슨, 내가 늦둥이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엄마는 이미 연로하고 히스테릭해지신 할머니께 나를 맡기는 게 부담스러웠다고 하고 집에 나를 혼자 내버려두기에는 엄마 역시 경험 많고 걱정 많은 40대였다고 설명하곤 한다. 어찌 되었든 내게 부부동반 모임은 참 익숙하고도 익숙해지지 않는 환경이다.
그런 모임에 가면 집에서 보는 부모님의 모습이랑은 항상 다르다. 아빠는 가끔 필요 이상으로 목소리를 높여 분위기를 띄우고 실없는 소리를 하신다. 사실상 집에서는 실세인 엄마는 세상 얌전하고 단아하게 앉아 아줌마들과 묘한 신경전을 펼친다. 남편 연봉 비교부터 자식들 자랑까지, 이런 예민한 대화 주제들은 항상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되는 것 같은데 그외에 이야기할 것들은 많이 없나 보다. 고민 아닌 고민을 털어놓으며 위안을 강요하기도 하고, 칭찬 아닌 칭찬을 하면서 한방 먹이기도 하고... 이런 살벌한 곳에서 나의 목표는 항상 하나였다. 그저 미움받지 말자. 너무 잘나서 질투의 대상이 되어도 안되지만 너무 실없어서 부모님 자존심에 상처가 가면 안된다.
이런 부부동반 모임이 참 바보같다고 느껴졌던 어린 시절을 걸쳐 어설픈 어른 구실을 시작해야 하는 나이가 된 나의 인간관계 목표 역시 참 비겁하게도 미움받지 말자이다. 나의 웃음 뒤에 어떤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모르는 이에게 지나친 관심과 사랑을 받는 것도 참 우습지만 어떻게 해서든 오해의 구실을 찾을 수 있는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미움받지 않는 것만도 천만다행이다. 이 불편한 사회에서 그저 피해주지 않고 공존할 수 있으면 대단한 성취 아닌가? 어릴 적의 ‘미움받지 말자’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기 위한 나름의 전략이었다면 지금의 ‘미움받지 말자’는 사랑보다 오해와 미움으로 얼룩진 아픈 관계들을 끝으로 한 적응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수많은 부부동반 모임에 동참해 미움받지 않는 최고의 어린이로 살아온 대가로 5월 5일 어린이날, 여전히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철없이 선물을 요구한다. 어린이날에 어린이만 사랑받으라는 법 있나? 이날의 힘을 빌려 사랑과 이해, 치유를 또 한번 기대하고 갈구해 보겠다.
<신선영(UC버클리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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