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를 핑계로 밤까지 새며 수다 세션을 펼쳤던 정든 도서관과 강의실을 뒤로하고 졸업사진을 찍는다. 캠퍼스는 또 왜 이리 큰지, 아련하고 시원섭섭한 감정은 얼마 가지 않아 배고프고 피곤하기만 하다. 하지만 시험이 다가오니 높은 힐을 벗고 안경을 챙겨 도서관 자리 전쟁에 동참해보기로 한다. 세상에나, 몇 달째 연락을 무시하고 있었던 불편한 그 선배는 이렇게나 커다란 캠퍼스에서 지금 이 시간에, 피할 수 없는 각도에서 걸어오고 있으니 세상 어색한 미소를 장전해 본다. 험난한 발걸음을 멈추고 겨우 자리를 잡았는가 했는데 눈앞에는 너저분하게 펼쳐져 있는 프린트물뿐. 도서관 코러스단 대원이 되어 박자감 있게 깊은 한숨을 내쉬어 본다.
학기말이 되면, 특히 졸업할 시기가 되면 여기저기서 정리를 요구한다. 한 학기 동안 배운 얕고 넓은 지식을 어디 요령껏 한번 정리해보라는 그 교수님의 얼굴만 떠올려도 대학생의 학기말이 얼마나 잔인한지 짐작해 볼만하다. 이맘때쯤이면 시험 준비를 완벽하게 끝내놓고 옛 추억들을 조금씩 곱씹으며 시원섭섭한 감정들을 즐기고 주변 사람들과 감사와 축하를 주고받으며 함께한 시간들을 아주 성숙하게 마무리하고 있을 줄만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어질러진 내 책상보다 나을 것이 없었다. 너저분한 강의 노트와 프린트물,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아쉬움과 후회의 감정의 편린들, 깔끔하지 못한 관계들 중 어디 하나 제대로 정리된 것이 없다.
이곳에서 학생으로서의 자아를 정리하고 다음 단계로 깔끔하게 넘어가면 참 좋겠지만 나의 현실은 시간적, 공간적 경계에 갇혀 있는 혼돈과 공존의 상태(liminality) 같다. 서양에서는 이런 상태를 집단이나 개인이 다음의 자아를 얻기 위해 존재하는 단계로 이해하는 반면 요루바(Yoruba), 아프리카 사상에 따르면 이런 경계에 갇혀있는 것만 같은 애매한 상태를 우리네들의 삶과 가장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그런 불편함을 즐겨도 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서양적인 관점에서는 이 경계가 필연적으로 다음 단계로 진입하게 해주는 통로일 뿐이라면 다른 문화권에서는 여러 자아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아름답게 공존할 수 있기에 존중받아 마땅하다. 산더미 같은 빨랫거리와 과제 노트에 머리가 아픈 오늘의 나는 과감히 후자의 편을 들어보며 고상한 핑계를 마무리하겠다.
<신선영(UC버클리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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