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된 카페에 굳이 앉아 있겠다고 했다. 에이드(Ade)류밖에 되지 않는다고, 심지어 카드로는 계산도 안 된다고 종업원이 그렇게 눈치를 줬지만 그 에이드를, 현금으로 내고 마시겠다고 했다. 창문 너머 어김없이 찾아온 봄 햇살을 온전히 느끼고 싶었고, 깜깜한 화장실에서 핸드폰 손전등을 켜고 볼일을 보는 불편함을 한껏 만끽하고 싶었다. 직원의 발소리, 수저가 닿는 소리, 바람이 부는 소리, 봉지가 뜯기는 소리를 들으며 내 시간을 마음껏 낭비하는 어느 토요일 오후다.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공부하던 시절 허리케인 샌디(Hurricane Sandy) 때문에 정전을 겪었을 때가 떠올랐다. 몇몇 기숙사에서만 장기간 지속된 정전 때문에 수업이 재개된 반면 우리는 여전히 손전등을 들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으며 손전등을 모아놓고 옹기종기 앉아 겨우 과제를 끝내고는 했다. 이미 꺼진 핸드폰과 컴퓨터를 뒤로하고 평소에 잘 쓰지도 않게 되어버린 교과서를 펼치고 페이지 사이를 헤맸던 그 시간이 낭만스럽게 포장되어 뇌리를 스쳤다. 막상 그 뭉게구름 같은 낭만을 헤집고 들어가 보면 그때의 나는 혹시나 내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손해볼까, 불편함과 불이익을 감당하게 될까 초조하기만 했다. 그 당시 조금 떨어진 기숙사에 거주하던 학생들이나 통학하는 학생들은 정전을 겪지 않아도 되었으니 스스로 만들어버린 경쟁 구도에서는 이 상황이 나를 너무나 불리한 위치에 처하게 한 것이었다.
대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후배가 이런 질문을 해온다. “4년 동안 학교 다니면서 후회되는 것 없어요?” 한없이 높은 욕심과 어리숙한 실수 사이 어딘가 후회할 만한 것들이야 항상 넘치지만 딱히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 모르겠다. 나는 “손해 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 불편함을 즐겨볼 것”이라고 외치며 굳이 후회되는 것은 없다고 대답한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같은 시험을 보지 않고 예고없이 찾아오는 정전처럼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는 일상 속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눈 질끈 감고 불편함을 감당해보는 것, 내 시간을 버려보기도 하며 조금 손해 보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런 불편함과 손해는 미래의 나를 미소짓게 할 것이 분명하다. 한번 눈 감았을 때 더 선명하게 보이고 비로소 비워냈을 때 더 풍족하게 채우지는 것은 그리 대단한 모순도 아니다.
<신선영(UC버클리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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