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종종 말한다. 나이 들면 왜 이렇게 무거운 게 많냐고. 나잇살이 자꾸만 늘어나고, 삶의 무게와 짐들, 다 들어야할 것 투성임에도 누구에게도 투정 하나 부릴 수 없다고 한탄한다. 그들의 무게를 함께 들어달라고 누군가에게 부탁하고 싶으나 그럴 수는 없다. 나이가 주는 압박감 때문이다. 그 나이에 맞게 살아야 하니까. 그럼에도 아직까지 어리광부리고 때쓰고 싶지만 그들이 가진 나이가 어색해서 피하고만 싶을 것이다. 시간이 드는 것도 문제였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데 도달하기까지엔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그 시간들을 분명히 그들이 소유했음에도 온전히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것도 또 하나의 문제였다.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었던 시절이 지나고 나잇살이 뭐 하나 제대로 빠지는 게 없는 때가 다가오는 내일이 낯설게 느껴지더라도 철없는 어린이의 모습에서 벗어나 사회적 규범에 맞는 어른의 삶을 살아야 하니까 그 나이 때에 적응해보려고 한다. 그렇게 살다가 뭘 해도 이상하지 않는 나이가 되는 것이 때로는 겁이 나기도 한다. 어린시절 밥만 먹어도 칭찬받던 시절에서 밥을 먹고 스스로 치우는 게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으니까.
언젠가 한번은 노트북의 타자기가 고장나 취소 버튼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적이 있었다. 취소 버튼이 눌리지 않는 타자기에 고칠 일을 최소화하기 위해 실수는 없었고, 실수를 하더라고 그것을 메꾸기 위해 처음부터 고칠 부분의 드래그를 잡아 다시 시작해야 했다. 삶이 그런 것 같다. 타임머신타고 지나온 세월의 뒤로 갈 수는 없기에 우리는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삶의 실수를 고쳐나간다. 그 안에서 우리는 드래그를 잡듯 고쳐나갈 부분을 스스로 설정해 남은 부분을 메꾼다.
나이를 내가 드는 것인지, 나이가 삶의 역경을 이겨낼 수 있게 하는 것인지 무엇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살다보면 느낀다. 지금은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해낸 그때의 내가 자랑스럽다고. 그렇게 어쩌면 나의 오늘이 미래의 내가 대견스럽게 느낄 수 있는 하루기에 오늘을 살아낸 나를 뿌듯해하며 살아가기로 했다. 나이가 주는 자신감 혹은 뻔뻔함이 그럭저럭 세상에 맞설 수 있게 하니까 말이다. 그 무게를 견뎌야 어른이 되듯이,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도 참된 어른의 모습이기에 오늘의 나이든 내 모습들이 삶을 살아가는데 단단한 무기가 되기를 바란다.
<김예은(UC버클리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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