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평일 아침이었다. 바쁘게 아이를 보내고 다시 드러눕고만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운동을 하자 결심한 후 YMCA로 향했다. 평일 아침 9시의 스포츠센터는 항상 그렇듯 주차할 공간이 없어 옆 병원의 주차장으로 서둘러 차를 돌려 갔다. 이미 시작된 프로그램에 늦은 탓에 마음이 급했다. 그 곳 삼거리, 쉴 새 없이 오가던 차들 사이로 휠체어 하나가 보였다.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고 풍채가 넉넉해 보이는 몸이 불편하신 미국 할아버지 한 분이 내 차 앞 스탑(stop) 사인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계셨다.
그런데 갑자기 할아버지는 팔을 노를 젓 듯 크게 휘두르시며 나 먼저 가라는 사인을 주셨다. 마치 내 급한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웃음 가득한 옆얼굴을 최대한 뒤로 돌리며 먼저 가라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본인이 느리게 갈 것을 알고 계셨기에 그렇게 하신 게 분명했다. 하나같이 덩치가 큰, 위협적이고 메케한 가스마저 내뿜는 차들 사이로 가장 초라한 휠체어를 타고서도 세상 당당한 표정으로 자신이 줄 수 있는 가장 소박하지만 가장 넉넉한 배려를 낯선 차들에게 베풀고 있는 그분의 모습에 나는 가장 초라하고 부끄러운 내 모습과 마주하게 되었다. 이미 프로그램은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나는 그것을 신경 쓸 수 없을 만큼 여기 온 목적을 순간 잊을 정도로 깊은 생각에 사로잡혔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가졌고 무엇을 누리며 그것을 얼마나 나누고 살아가고 있는지 떠올려 봤다. 이 작은 사건 하나가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기초적 개념을 흔들었고 또한 그런 나를 초라하게 했다. 더불어 세상도 사람들도 다시 보였다. 더 가지기 위해 몸부림치는 세상에서 그 어떤 것도 지고 싶지 않고 손해보고 싶지 않은 비뚤어질 대로 비뚤어진 자아들이 불쌍했다. 마치 어그러진 세상을 향해 “나는 부자야!”라고 할아버지는 외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생색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그저 넉넉한 웃음으로 마음까지 건네 주었다.
나는 아직도 그때 일을 생각한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상황과 관계없이 정말 행복해질 수 있는가에 대해 바라고 소망한다. 늘 녹록하지 않은 이민생활에서 진짜 부자로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기르고 싶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는 그 당연하고도 가장 어려운 힘을 말이다.
<유정욱(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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