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물쇠를 샀다. 작년부터 벼르던 자물쇠였다. 빨강 매직펜을 휘갈긴 경고문도 달았다. “잡히기만 해봐라!” 작년에 누군가 자꾸 토마토를 따갔다. 심지어 한달동안 수확도 못했다. 2-3일에 한 번 한바구니씩 땄던 토마토였는데... 더 키워서 먹으려고 애지중지하던 주먹만한 브로컬리마저 “싹뚝” 베어간 날, 속상함에 밤잠마저 설쳤다. 어린 시절 학교 교문 앞 병아리 장수 아저씨에게서 100원씩 주고 노랑 병아리 두 마리를 사서 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노란 깃털 흔적 하나없이 사라진 그 날의 상실감과 충격 그 이상이었다.
나는 4년 경력(?)의 텃밭 초보 농사꾼이다. 화병의 꽃 한송이도 제대로 못 돌보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토마토, 호박, 마늘 등 다양한 채소를 계절에 따라 바꾸어 가며 씨와 모종을 심고 가꾸고 있다. 텃밭에서 보라색 치커리 꽃, 하얀색 당근 꽃도 마주한다. 민트 티를 좋아해 늘 사서 마시는데 담장 너머 민트를 발견한 날은 자연의 선물을 받은 듯 기뻤다. 많은 것들이 오염되어 가고 건강한 먹거리를 고민하는 요즘, 도시 한복판에서 건강한 자연을 먹고 마실 수 있음이 감사하다.
한국에서 임상영양사로 일하며 칼로리, 영양학, 식이요법 등을 다뤘는데, 텃밭을 통해 이제는 내 관심과 사고, 그리고 세상을 보는 눈도 조금씩 바뀌어 간다. 텃밭 가꾸기는 즐거운 노동이다. 삽질과 호미질을 하고, 잡초를 뽑고 나면 땀이 뚝뚝. 오늘도 손톱 밑은 새까만 흙이 끼고, 가시에 찔린 상처로 거칠어 가지만 흙 때 묻은 내 손이 소중하고 예쁘다.
밭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열매를 맺는다 하는데, 초보인 나는 물주기를 거를 때도 있고 잡초를 방치할 때도 있다. 그러나 한결같이 잘 자라주는 식물을 보며 흙, 바람, 물, 햇살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내가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은 하늘을 몸 속에 모시는 일이라 어느 시인이 말했던가… 때론 염치없고 미안한 마음 가슴 한켠에 간직하며 감사로 식탁에 올린다.
자물쇠를 앞에 두고 여전히 고민이다. 잠글까 말까… 토마토는 영글어 가고, 이미 주키니들은 아이 팔뚝만하다. 비트, 근대, 심지도 않은 각종 채소들까지 쑥쑥 자란다. 작년 그 서리범이 자연의 소중함과 노동의 수고로움을 알았다면 내가 이리도 속상하지는 않을텐데… 오늘도 녹색 가득한 텃밭에 물을 주며 나는 농심(農心)을 배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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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희원(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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