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교회 행사가 있어 서너 살 남짓 된 아이들과 며칠에 걸쳐 많은 시간을 보냈다. 솜사탕 하나, 과자 하나 양손에 꼬옥 쥐고 볼록 튀어나온 배의 이끌림에 따라 걸어가는 아이들은 한없이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의 세계도 꽤나 치열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벌써부터 아이들 간의 친구 그룹과 서열이 확고했고 특정 아이는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끼지 못하고 항상 혼자 노는 것이었다. 부모와 떨어질 수 있는 가장 어린 나이인 서너 살의 아이들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런 상황은 내게 꽤나 충격적이었다.
주변 친구들은 그 정도로 어린아이들은 배고프다고 징징거리고 피곤하다고 무조건 드러눕는 만행들을 일삼을 뿐 아니라 그저 말이 제대로 안 통하기 때문에 돌보기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시켜줘야 하는 데서 오는 육체적 피곤보다 정신적인 충격과 걱정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훨씬 심했다. 우선 나는 평소 아이들을 멀리 바라보면서 내 마음대로 가졌던 유대가 얼마나 웃긴 것인지 뒤돌아보며 회의에 휩싸였다. “저 아이들은 어쩜 저리 순수하고 착하지” 같은 생각을 하며 마음이 따듯해짐을 느낄 때 나는 그들의 실제 내면과 상황에는 조금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대신 알지도 못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가지는 유대감에 스스로 감탄하면서 내가 굉장히 따듯한 사람이라도 된 것 마냥 으쓱했던 것이다.
이런 나 자신을 인정하는 과정에서 오는 충격과 회의 이외에 나에게는 또 다른 걱정거리가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가 있었는데 혹시나 이 아이의 부모님께서 이 사실을 알고 너무 속상해하시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이 아이가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인정받을 수 있도록 사탕이나 장난감을 더 쥐여주는 등 관심을 유도했다. 최소한 부모님께서 아이들을 데리러 오는 시간만큼은 누구보다 인기 많은 아이로 만들어주리라 몇 번이고 다짐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시간이 찾아왔을 때 나는 내 걱정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는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모든 학부형은 아이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환하게 웃으셨다. 그리고 나는 이 세상 모든 유대에 회의를 가질 필요는 없겠구나 싶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신선영(UC버클리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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