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매스컴을 들썩이며 올라오는 새로운 소식들에 요새는 다음날 신문을 펴보기가 꺼릴 정도로 힘이 든다. 또다시 총격사건이 일어나고, 그것도 모두가 애용하는 장소인 코스트코에서 일어났다는 것에 심리적 충격은 더 컸던 것 같다. 또한 한국에서도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인면수심(人面獸心)의 고유정 사건이 그러하다.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야만 하는 것인가, 왜 이들은 이렇듯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어쩌면 모든 사건의 발단은 사람들이 충분히 사랑받지 못해 생겨난 일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내 존재의 확인을 위해 관심을 끌고 그것을 위해 행동 하는 것. 실로 그것은 어린아이들이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되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들의 충족될 수 없는 삶에 대한 처절한 자기피력과 역으로 비난받고 싶지 않고 숨기고 싶은 자기방어의 일환일 수도 있겠다.
오늘 아침 곧 대학에 갈 큰아이와 조그만 말다툼이 있었다. 늦은 사춘기가 혹독하게 와버린 큰아들의 주장은 모든 것이 싫고 자주 혼내고 보채는 부모님에게 불만이라는 이야기다. 그 아이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나는 왜 “나를 사랑해 주세요! 나에게 관심을 주세요! 나를 믿어 주세요!”라고 들렸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나는 여전히 어설프고 아이 같은 자녀를 대학에 보내려는 어머니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고 사랑을 충분히 주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내 마음에 알 수 없는 서운함과 미안함이 교차했다. 사랑은 아무리 받거나 줘도 끝이 없구나... 도대체 얼마의 사랑을 받아야 흡족함을 느낄까? 얼마나 넉넉히 퍼줘야 모든 이들이 사랑을 느끼는 너그러운 사람이 될까? 고민하면서 그렇다면 나는 정작 충분한 사랑을 받고 있나? 라고 스스로에게 깊이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다.
범죄자들의 극단적인 선택의 행동을 옹호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힘들다고 그런 일들을 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다만 그들도 누구의 딸이고 누구의 아들이였을 텐데 그들에게 흡족한 사랑은 과연 어느 정도였으며 그것을 바르게 적절히 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었다. 우리가 각자 내 아이를 잘 키워 사회로 보낸다면 최소한 제2의, 제3의 이런 일들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희생된 모든 피해자 분들에게 조의를 표하며 내일 신문에선 즐겁고 훈훈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유정욱(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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