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우연히 은사님의 퇴임 소식을 접했다. 선배가 SNS에 올린 사진 속 교수님들의 모습에는 세월의 흔적이 가득했다. 내 머릿속에는 여전히 젊디 젊은 모습의 교수님인데, 이제는 희끗희끗해진 머리로 ‘퇴임’을 마주하신 은사님을 보자니 마음 한켠이 먹먹하다. 동기들의 채팅방에는 뒤늦게 교수님의 퇴임 소식을 접한 친구들의 대학시절 추억소환이 한창이다. 추억 속 우리는 여전히 20대인데… 그때는 꿈과 열정도 많았고, 뭐든 다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가슴 벅찬 시절이었다. 시간이 훌쩍 지난 지금, 그 열정의 자리는 어느새 두려움과 막막함으로 채워져 가는 듯하다.
어릴 적엔 엄마의 화장품들이 탐이 났다. 엄마 몰래 립스틱도 바르고 눈화장을 했던 기억이 난다. 엄마의 하이힐이 그렇게 예뻐보였고, 걸을 때마다 나는 “또각 또각” 소리가 좋았다. 마냥 빨리 어른이 되어 예쁘게 멋을 부리고 싶었고, 내가 꿈꾸는 모든 걸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다 시나브로 그렇게 되고 싶던 어른이 되었고, 누군가에게 아줌마라 불리던 날 마음 한켠이 ‘쿵’ 내려앉았다. ‘동안’이라 나름 자부하며 살았는데… 독설(?)을 날린 상대를 향해 원망의 독백을 하기도.
얼마 전, 여덟살 조카가 친구에게 “너네 엄마는 몇살이야?” 묻자 “응, 우리 엄마 스물두살” 한다. 조카가 반가움에 “그래? 우리 이모 스물한살. 그럼 너네 엄마가 언니네” 한다. 그러다 뭐가 이상한지 조카는 “그런데 너네 엄마는 왜 우리 이모한테 언니라고 부르지?” 둘이 갸우뚱하더니 다시 인형놀이를 한다. 대화를 듣던 나는 그 상황이 우습기도 하고, “누구나 나이드는 게 싫구나” 싶었다. 순진무구 조카들에게 내 나이는 스물한살이었다. 조카들 앞에선 언제나 21 Forever를 외쳤다. 누군가 당황스럽게 내게 나이를 물으면 난 언제나 농담삼아 영원한 스물한살이라 대답했다. 꿈많던20대로 영원히 남고 싶은 마음 가득히.
2015년 UN에 따르면 18-65세는 ‘청년’, 66-79세는 ‘중년’, 80세가 넘어서야 비로소 ‘노인’이고, 100세를 넘으면 ‘장수 노인’이라 한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겨우 청년’이다. 왠지 위로가 되고 마음에 평온함마저 느낀다. 설레임으로 잠시 잊었던 꿈을 떠올리며 내 안의 스물한살인 나를 불러본다. 응답하라! 내 안의 스물한살 꿈과 열정이여!
<진희원(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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