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일이다. 동료 교육위원의 딸이 여름 방학 동안 뉴욕 주의 우드스탁에 있는 한 소극장에서 뮤지컬 공연에 참여한다고 했다. 대학에서 뮤지컬을 전공하는데 아주 좋은 경험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언제 기회가 되면 한 번 가보지 않겠느냐고 물어 왔다. 먼 거리이지만 동료와 그 학생에게 격려가 될 것 같아 가보기로 했다. 우드스탁은 과거에 히피 문화로도 유명했던 곳이다.
그런데 운전해서 다녀오려면 왕복 12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그러나 하룻밤 묵고 오기도 여의치 않아 뉴저지에 사는 후배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일단 뉴저지까지는 기차로 올라 가고 그 곳에서 후배와 운전해 다녀오는 것이다. 일요일 공연은 오후 2시 밖에 없어 오전 6시 10분 워싱턴 DC 출발 기차를 예약했다. 그리고 오전 4시에 일어나기로 했다. 그래야 준비하고 40분 정도 걸리는 기차역까지 가서 주차해 놓고 커피라도 한 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후배에게는 오전 9시 반 경에 역에서 픽업을 부탁해 놓았다. 그러려면 좀 일찍 자야 하는데 평소처럼 늦게서야 잠자리에 들게 되었다.
얼마나 잤을까. 별안간 잠이 깼다. 머리맡에 둔 전화기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5시 16분! 아니 이럴 수가. 분명히 4시에 알람을 맞추어 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하지? 모든 것을 취소해야 하나? 아냐 그럴 수는 없어. 동료 교육위원이 표까지 미리 구해 놓았고 공연 후 뉴저지에 다시 돌아와서는 저녁식사 약속도 있는데. 무조건 가야 한다. 기차표를 다시 끊는 한이 있어도.
최대한으로 빨리 준비하자. 양치부터. 20초만에. 내 인생의 기록이다. 세수도 해야지. 그리고 자다 일어나서 머리가 엉망이니 샤워는 몰라도 머리만이라도 감아야 한다. 그 다음에는 뭘 해야 하나? 일단 우버에 연락하자. 3분 만에 온다고 하네. 다행이다. 대충 옷을 입고. 전날 밤 미리 챙겨 놓은 작은 가방을 들었다. 아, 혈압 약 먹어야 되네. 기왕이면 그 옆에 놓여있는 비타민들도 챙기자. 이제 다 된 것 같다. 빨리 나가 보자.
나가 보니 우버가 벌써 와서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뛰어가 올라타니 5시 23분. 그러니까 눈을 뜨고 단7분만에 대충이지만 준비하고 집을 나선 것이다. 평소에는 30분도 많이 부족한데 말이다. 급하니까 이렇게 빨리 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이제 운전사에게 사정 좀 해야겠다. 일단 6시 10분 기차를 타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도착 예정시간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5시 59분이란다. 고맙다, ‘그런데 아침에 차들이 별로 없지요’라고 넌지시 물어보았다. 그러니까 좀 더 빨리 운전하면 안 되겠느냐는 주문을 담았던 것이다.
그랬더니 운전사가 감을 잡았던 것 같았다. 몇 분 정도라도 당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지갑을 뒤져 현금으로 팁을 건냈다. 팁은 보통 라이드가 다 끝난 후에 주는데 미리 줘야 약발이 더 먹힐 것 같았다. 그랬더니 운전사가 말하기를 사실 내가 그 날 운이 좋았단다. 일요일 아침 그 시간에 우리 집 근처에는 우버가 금방 오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은 우연히 멀지 않은 곳에서 손님 한 명을 내려 놓고 11분 정도 떨어진 다른 손님을 픽업 하러 가려다가 내 연락을 받았단다. 내 집이 훨씬 가까와 먼 손님을 취소하고 왔다고 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분명히 제 시간에 기차역에 못 도착했을 것이란다.
그렇게 역 앞에 도착하니 5시 56분. 기차 출발까지는 14분이 남았다. 승강장 위치를 찾아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아니 사실 뛰었다. 역 내에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승강장 입구에 가까이 가자 줄이 엄청 길었다. 이럴 수가. 그냥 맨 앞으로 달려가 먼저 들어가도 되느냐고 사정을 해볼까. 아 그러기에는 너무 창피한데. 좀 기다려 볼까. 이런 생각 중 다행히 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도 제법 빨리. 기차로 달려가 올라탔다. 시계를 다시 보았다. 6시 정각. 아, 10분 여유가 있네. 이럴 줄 알았으면 집에서 화장실을 다녀 오는 건데. 역에서 제대로 된 커피도 한 잔 사고 말이야. 이런 배부른 생각이 들자 별안간 다리에 힘이 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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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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