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여름답지 않게 서늘한 날씨가 이어지더니 어느새 캘리포니아 날씨답게 다시 푹푹 쪄 오른다. 아침에 일어나면 마치 비가 올 듯 꾸물대던 날씨가 정오를 채 못 넘겨 쨍 하니 눈이 부시게 햇살이 부서져 내린다. 그러면 그렇지. 유난히 비를 좋아하는 나와 큰아들은 7월의 캘리포니아에 비를 기다리는 가당치 않은 소망을 가졌다가 이내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전세계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날씨를 누리고 사는 내가 차 한잔을 앞에 놓고 쨍 하고 맑은 창 밖을 보고 있자면 참으로 호사스러운 말이지만 그날이 그날 같은 무료함과 함께, 지금 이 시간과 공간 안에 있는 내가 낯설기 짝이 없다. 수많은 연주로 바쁜 나날을 보냈던 한국에 있던 시절이 스쳐가기도 하고, 이름만 불러도 문 열고 나와 줄 것만 같은 돌아가신 엄마 생각도 나고. 아이들 라이드에 살림에 또 레슨에, 여전히 바쁜 삶을 이어가고 있는데도 나는 왠지 여전히 이곳에서 이방인인 듯 느껴진다. 어느새 내려앉은 서릿발 같은 흰머리와 나름 괜찮았었으나 점점 처지는 눈매의 완연한 중년여성으로 변해가고 있는 나자신과 함께, 귀여운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같은집에 살아도 자기방에 콕 박혀 얼굴 한번 보기 힘든 훌쩍 커버린 아들들도 참 낯설다. 평생 젊을 것만 같았던 내 형제들도 어느새 60줄이 넘어가고 외로운 이민생활 함께해주던 친구들도 하나 둘씩 고국으로 돌아간다.
이렇게 변화무쌍한 시간 속에서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는 쳇바퀴 같은 일상은 계속되고 하루에도 수없이 무너졌다 일어나는 내 존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과연 반복되는 이 낯선 환경에 내가 어떻게 내 자아를 지켜낼 수 있는지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 나이가 벌써 뒤를 돌아볼 나이가 되었고 내가 어디로 얼마 만큼 달려왔나 뒤돌아볼 수 있을 만큼 여유롭구나 하는 생각에 먼저 감사했다. 어쩌면 이민생활의 낯섦보다는 인생의 가을로 가고 있는 내가 낯설었던 것일 수도 있다. 누구든 원치 않아도 맞이해야 할 순간이지만 앞에 무엇이 닥칠지 모르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충분히 두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느새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잊은 것 같아서 나에게 미안했다. 오늘은 나에게 수고했다고 선물을 주려고 한다. 그리고 나지막이 나에게 칭찬해본다. “여기까지 오느라 참 수고했어!”라고...
<유정욱(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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