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가 운다. 아주 서럽게.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울고 있다. 왜 우는지 물었다. 세 살 터울 여동생과 말다툼을 했단다. “오빠는 축구선수가 될 수 없어”라고 가슴에 못박는 이야기(?)를 했고, 그게 상처가 되어 그리도 우는 것이었다. 여느 사내애들과 마찬가지로 조카는 축구를 너무 사랑한다. 축구선수가 되는 게 장래희망이다. 그런데 여동생이 찬물을 끼얹어 놓았으니 얼마나 속상했을까. 침대에 누워 있는 조카를 달래주니 “나 꼭 축구선수 될 수 있는 거지?” 한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될 수 있다는 다소 식상한(?) 위로에도 맘이 풀려 꿈나라로 직행한다.
누구나 그렇듯 나도 어릴 때는 되고 싶은 것이 셀 수 없이 많았는데… 대통령 빼고는 다 되고 싶었던 천진난만했던 시절.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저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는, 꿈과는 전혀 상관없는 듯한 길을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늘 되새김질하면서도 내심 그 숫자에 나를 스스로 가두고 한계를 만들곤 한다. ‘성공지향’의 현실 속에서 난 이미 늦었다고 절망하기도…
일흔을 넘기신 엄마는 여전히 꿈을 가지고 계신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았던 엄마다. 지금의 내 나이에 우리 삼남매를 키우며 시집살이를 하면서도 늘 무언가를 열심히 배우러 학교와 학원을 다니셨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치열한 ‘시월드’ 속에서도 꿈과 열정을 놓치지 않고 끝까지 붙들고 계셨기에 가능했었으리라. 엄마는 지금도 종종 내게 말씀하신다. “나는 지금도 해보고 싶은 게 너무 많다. 네 나이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늘 꿈을 꿔라. 목표를 향해 걸어가라”고 말이다. 사람은 몸으로 늙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늙는다 한다. 내 삶의 경쟁상대는 내가 만드는 한계와 두려움일 뿐.
시간은 누구에게도 냉정하지만 꿈을 가진 사람 편이라 생각한다. “괜찮아, 힘을 내. 넌 할 수 있을 거야. 뒤를 돌아봐. 웃어 이만큼 온 거잖아.” 나를 위로하고 응원하며 노랫말을 흥얼거린다. 잘못 든 길이 새로운 지도를 만들 듯, 비록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내일에 대한 두려움 너머 있을 나만의 꿈을 향해 마음을 가다듬고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는 나만의 ‘소심한 용감함’으로 내일로 가는 나만의 지도를 그려본다. 축구선수가 꿈인 조카에게 내일은 손흥민의 에세이집을 선물해야겠다. 조카의 꿈도 응원하며…
<진희원(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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