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검사를 받으면 나는 한결같이 ENTP 웅변가형으로 나온다. 그래서인지 오랜 시간 한자리에 앉아 꼼꼼하게 일을 하는 것이 내게는 큰 도전이다. 구조를 파악하고 머릿속에 개념이 잡히면 그때부터 들여다보기 싫어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 이것이 남들과 차별되는 시작점인데 그때부터 권태감이 드는 것이다. 게다가 치밀함을 담당하는 좌뇌보다 즉흥적인 우뇌가 발달돼서 외부 환경에 쉽게 자극받는다. 하지만 대중들이나 카메라 앞에서 가르치는 일은 하루종일 즐겁게 할 수 있다. 무리없이 하루에 13개 강의를 마친 나를 보고 촬영 피디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웬만한 베테랑 강사들도 하루에 10개 강의는 힘들어 하는데, 선생님은 촬영이 천직인가 봐요.” 이렇듯 카메라와 대중들 앞에 서는 것은 놀이이자 즐거움인 반면 그외의 것들은 내적 소모를 일으킨다. 꾸준함 그리고 지속, 이런 류의 단어는 늘 나를 진퇴양난의 느낌으로 밀어넣는다.
의도적인 지속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내가 현재 하고자 하는 일에 능숙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누구나 묻어 두고 싶은 처음과 중간과정이 있게 마련인데 많은 경우 소수가 누리는 영광의 장면만 목격하기에 지금의 내 자리가 초라하게만 보인다. 타인에게 받는 인정에 먼저 목말라 있어 본질이 흐려져 있기 때문이다. 현실과 달리 마음만은 이미 정상에 가 있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견디지 못한다. 내 열심과 내가 그리는 성공이 맞닿아 있지 않음이 일상의 꾸준함을 방해한다. 성과는 나를 제외한 소수의 몫일 것 같은 은근한 거절감을 느꼈다. 내 노력의 댓가에는 왠지 ‘다음 기회에’라고 적혀 있을 것 같아 묘하게 속는 느낌이 싫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속는 느낌을 ‘역 이용’했다. 이왕 속는 거 매일 속는 셈치고 하루 단위로만 해보기로. 늘 성공을 위해 애걸하는 마음으로 임했다면 이제는 ‘여기, 내 자신에게 최소한의 매너를 지키겠다’고. 영원한 ‘을’에서 ‘갑’의 심정으로 너그러운 속음을 허락했다. 악착을 떨기란 원래 어렵다. 우리는 알파고가 아닌 인간이라 악착을 반기지도 않는다. 또 성취 후에도 그 자리를 유지하기란 더 어렵다. 과정이 즐겁지 않다면 해낸 후에도 즐겁지 않다. 그러나 지금 내가 지속해야 하는 일이 얼마나 내 삶을 윤택하게 해줄지를 상상하며 오늘도 달린다.
<유명현(동시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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