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취적이고 강한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모든 삶의 영역을 통제하려는 욕구가 강하다. 특히나 자신을 넘어 타인의 삶마저도 통제하려 하는 성향 때문에 곤욕을 치를 때가 많다.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말끝마다 가르치려 들고 상대가 요구하지 않은 충고의 말을 서슴없이 한다. 소히 ‘꼰대’라 불리우는 부류들이다.
과거에 연거푸 실패를 경험하고 좌절에 빠졌을 때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싶은 나약함에 빠져 있었다. 유독 나의 이야기를 유심히 경청해주는 누군가에게 고마움을 느꼈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조언을 구했다. 나보다 훨씬 높은 연륜과 통찰력에 매료되었다. 내 자신의 목소리를 듣기엔 자존감이 무척 낮았다. 하지만 멘토링을 가장한 이 돈독함은 어느새 나의 생각과는 달리 통제 시스템으로 변형되어 가고 있었다. 그후로 대화는 더 이상 쌍방의 소통이 아닌 일방적인 훈계가 되었다. 매번 나의 느낌과 반응에 대한 질책을 들었다. 슬프게도 그 질책들은 많은 경우 동의할 수 없는 상대의 억지였다. 감사는 불쾌함으로 바뀌어 갔다. 나는 경청과 공감을 원했을 뿐인데 점점 나의 개인적인 생활과 나의 나됨까지 범위를 넓혀갔기 때문이다. 지나온 시간들을 생각하며 대화 내용들을 되짚어 보았다. 그 과정 속에 나의 나약함이 드러난 경우가 많았기에 상대가 나를 통제하려 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 경험을 한 후 나는 누군가를 위한답시고 통제하려 들지 않았나 되돌아봤다. 내 경험이 내게 남긴 임팩트가 너무 강력했기 때문에 내 의견이 정답이라 우기듯 말한 일이 있었다. 상대도 똑같은 난항을 겪을까 지레짐작하며 상대방이 요청하지 않은 충고를 해댔다. 개인의 고유함을 강조하는 요즘 시대에 ‘꼰대’라는 용어가 자주 거론된다. 권위적인 사고를 가진 어른이나 선생님을 비하하는 학생들의 은어라고 한다. 상대를 위한다고 생각하는 과잉의 오지랖은 오히려 상대를 잃게 만든다. 신뢰도 관계도 망가진다. 제각각 다른 모양과 색깔의 삶을 사는 이곳에서 내가 항상 옳다는 오만함에는 약도 없다. 이것은 어쩌면 상대를 향한 믿음이 없다는 반증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남이 겪는 일들에 무관심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중용이 가장 중요하다.
<유명현(동시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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