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만든 재앙을 경험하고 일상에 복귀했다. 올해는 5년 간 모진 풍파를 겪었던 부산국제영화제가 재도약을 선언하는 해이자 한국영화 100년을 기념하는 해다. 기념비적 행사에 참석한다는 기쁜 마음과 달리 부산으로 가는 길은 시작부터 험난했다.
태풍 예비 특보가 발표돼 영화제 전야제를 취소하고 야외구조물 등을 철거한다는 소식을 들으며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나마 태평양을 건너는 동안 태풍 미탁이 약화되어 가슴을 쓸게 했지만 인천에서 부산으로 향했던 아시아나 항공기는 김해공항 착륙을 위해 2시간 반을 창공에서 배회했고 급기야 3번째 착륙 불발로 인천 회항을 택했다. 연료 공급 후 다시 출발한 비행기가 부산에 도착할 무렵에는 언제 태풍이 지나갔다 싶게 화창한 날씨를 보였다.
그렇게 영화제는 무사히 개막을 했다. 그런데 왠걸. 초청장에 찍힌 개막 리셉션 장소가 해운대 그랜드호텔에서 파라다이스 호텔로 갑자기 변경됐다. 영화 관계자 1천명이 참석하는 초대형 행사가 하루 전날 변경된 이유인 즉, 호텔 폐업에 반발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해운대 그랜드호텔 노조가 개막식 당일 전면 파업에 들어가서다. 호텔 측은 국제 행사를 앞두고 파업을 강행하진 않겠지, 하더라도 노조 참여인원이 적을 거라 예상했지만 이번 만큼은 달랐던 모양이다. 대외적 악재와 대내적 상황으로 적자를 극복하지 못해 올해 말까지만 영업하기로 했다는 해운대 그랜드호텔 측의 일방적 폐업 통보에 대한 노조의 극단적 대응이었다.
영화제 공식 본부 호텔은 개·폐막식 리셉션 및 각종 시상식, 배우와 감독 등의 숙박 장소로 사용된다. 게다가 스타들을 보러 세계 각지에서 영화팬들이 몰려든다. 국제적 망신을 무릅쓰고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자 파라다이스 호텔이 부랴부랴 영화제 본부 역할을 넘겨받았고 하루 전날 변경된 행사는 파라다이스 호텔 직원들의 밤샘 노력으로 치러지긴 했다.
올해로 24회째를 맞이한 부산국제영화제는 일년 중 가장 날씨가 좋은 시기인 10월초 개막한다. 그러나 수년째 계속된 이상기후 현상은 영화제의 명물이던 해운대 해수욕장 ‘비프 빌리지’를 폐쇄시켜 축제 분위기가 한풀 꺾였다. 넷플릭스가 초청한 할리웃 배우 티모시 샬라메와 원로배우 김지미씨가 없었다면 스타 부재로 열기조차 낮았다.
이런저런 아쉬움을 뒤로하고 돌아온 LA도 만만치 않았다. 악마의 바람으로 가장 파괴적인 위력을 낸 산불로 인해 프리웨이가 차단돼 구비 구비 산길을 넘어 집에 와야 했다. 자연재해는 우리 힘으로 돌이킬 수 없다. 그렇다면 인간이 하는 일은 화해와 협력으로 극복 가능할까. 파업과 폐업이 맞서는, 양극화를 달리는 세상에서는 이 또한 어렵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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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선 사회부 부국장 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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