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expire 한 환자를 봤다. 2시 45분 pulse가 멎었다. Heart monitor 상 flat은 아니었지만…. 몸의 전체를 관장하는 heart는 이미 stop 된 것이다…. 번갈아 가며 맥을 집고 BP를 check 했다.’
거의 20년 전 간호대생일 때 쓴 일기 일부분이다. 의학용어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일부러 영어를 섞어가며 썼다. 병원에서 일하기 위해, 의학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선 마치 새로운 언어를 배우듯 의학용어를 배워야 했다. 불행히도 많은 의학용어는 외국어다. 순수 한글보다는 영어 자체를 쓰거나 한자어를 빌려 쓰는 경우가 많다. systolic blood pressure는 수축기 혈압이라는 한자어로, perforation은 구멍 대신 천공이라는 한자를 쓴다. 간혹 한글, 영어, 한자 3가지를 다 알아야 할 때도 있다. 예를 들면 kidney, 신장, 콩팥 같은 경우다.
한글날 즈음에 ‘나비잠’, ‘사부랑사부랑’ 같은 이쁜 한글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을 보다가 영어를 잘 안 쓰는 북한의 의학용어와 남한의 의학용어를 비교해보고 싶었다. 이미 의학단체에서는 의학용어 통합을 위해 힘쓰고 있었다. 북한 의료진에게 치료받을 일은 없겠지만, 반대로 북한 사람을 치료할 일이 있을 수도 있으니 환자 눈높이에 맞춰서 영어, 한자 외 북한 한글 용어도 알아두는 게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이뇨제-오줌내기약, 진통제-통증멎이약, 해열제-열내림약, 장폐색증-장불통증, 우울증- 슬픔증, 야뇨증-밤오줌증, 마약중독-아이스중독, 위경련-위동통, 봉합-꿰매기, 드레싱-붕대교환, 지혈-피멎이, 한의사-고려의사, 치과의사-구강의사, 간호사-보조의료 일꾼… 의료계가 ‘남북 의학용어 사전’의 필요성을 깨닫고 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했다.
전문직과 일반 사람과의 차이 중 하나는 말하는 단어의 세계이다. 전문적인 단어, 한자든 영어든 뭔가 이해하기 힘든 단어를 말할 때 전문직과 일반인은 구별된다. 슬프게도 쉽게 지식과 정보를 나누기 위해 만든 한글은 그 용이함과 편리함 때문에 전문직의 구별성이 떨어져서인지 의학의 세계에선 아직 덜 사랑받는 듯하다.
외계어 같은 의학용어 앞에서 주눅이 드는 환자들이 있다. 쉽지 않은 의학용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사람을 보면 혹 같은 의료계통 사람인가 하는 마음에 긴장하고 좀 더 친절하게 된다. 반대로 병원에 가서 슬쩍 의학용어를 사용해서 증상을 설명하면 병원의 좀 더 빠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한글을 배우지 못해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쓰지 못했던 할머니들이 계셨다. 나이 70세가 돼서야 한글을 배우고 배운 한글로 속마음을 표현할 수 있어 기쁘다는 할머니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아픈 증상도 한글로 좀 쉽게 이해되고 나누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학용어가 이해되기 쉽게 한글로 통합되면 세종대왕이 얼마나 뿌듯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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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리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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