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는 두 가지 방법, 머리를 쓰느냐 힘을 쓰느냐 둘 중에 하나를 잘 선택하면 된다고 어릴 때부터 믿어왔다. 허약체질이라는 말을 듣고 자란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이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버렸다. 어깨 너머로 언니가 공부하는 책들을 훔쳐보았던 덕에 혼자 한글을 뗀 나는 공부가 너무 하고 싶어서 엄마한테 학교에 보내달라고 졸라댔다. 당시 한국은 8살에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는 것이 관례였지만 어쨌든 나는 6살에 1학년에 입학했다.
키가 작아 맨앞에 앉은 나는 선생님 말씀에 귀기울이는 그 시간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었다. 부러워했던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때는 그저 좋았다. 그러나 문제는 체력이었다. 학교까지 가방을 들고갈 힘이 없어서 늘 엄마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숙제를 할려고 연필을 잡고 글을 쓸려고 하면 어느새 오른 손목에 힘이 풀려서 도저히 글을 써 내려갈 수가 없었다. 안간힘을 쓰며 버텼지만 너무나 허약해서 더 이상 학업을 계속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급기야 석달만에 초등학교 1학년을 중퇴하고 말았다.
너무나 슬펐던 나는 어린 나이에 이렇게 생각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힘쓰는 일이 아니라 머리를 쓰는 일이라고…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나는 가족들의 보호대상이 되어 결혼 전까지 힘쓰는 일은 거의 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약한 체력에 대한 보상심리였나, 나는 나와 매우 반대 성향인 키도 크고 건장한 체력을 가진 공대 출신의 남편과 결혼했다. 남편이 약한 나를 도와 집안일도 척척 해줄 것이라는 나만의 부푼 기대를 가지고… 결혼 후 처음 얼마동안은 나만의 기대가 잘 수행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긴 세월을 살다보니 나는 바뀌어 있었다. 머리쓰기보다 힘쓰기를 더 많이 하며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두 아이를 낳은 힘으로, 두 아이를 키운 힘으로, 더 이상 책가방을 들지 못했던 연약한 어린아이가 아닌 강인한 엄마로 그렇게 세월을 이겨왔던 것이다. 이제는 머리쓰기와 힘쓰기가 가정주부의 필수덕목임이라고 외치는 나는 스스로를 격려하며 오늘도 무거운 책상을 혼자서 번쩍 옮긴다.
<엄영미(SF갓스이미지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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