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까진 쉬어가는 달 11월, 그런데 올핸 유난히 바쁘다. 생각지 못한 손님 초대도 치렀고, 몇 포기 안 되더라도 김장도 해야 하고, 누군가 곶감을 만들었다기에 솔깃해 사 놓은 감도 가득이다. 바쁠 일이 없었는데, 괜한 일을 만들어 정작 해야 할 일들이 뒷전이 되고 말았다.
그중 하나가 텃밭 정리다. 아직 꽃이 피는 가지랑 고추는 혹시나 하는 기대로 맘 편히 몇 주를 미뤘다. 하지만 가지는 아이 손만큼 크고는 더 자라지 않았다. 그래도 보랏빛 가지 꽃은 마른 잎 사이로 더 곱다. 한 가지에 빨간 고추와 파란 고추 그리고 친절이라는 꽃말처럼, 고개 숙여 핀 하얀 고추꽃도 자꾸 뽑아 정리하는 걸 망설이게 한다. 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한뼘씩 자라던 부추도 이젠 머리카락처럼 얇고, 힘이 없다. 한달 가까이 녹색으로 매달려 있는 방울토마토도 익는 속도가 더디다. 그렇다고 더 미룰 순 없다. 제대로 된 가을 마무리가 찬란한 새 봄을 만들기 때문이다.
덜 여물어 매운맛이라곤 없는 작은 고추까지 모조리 따 모으니, 세 포기에서 두 손에 가득할 만큼 고추가 모인다. 긴 가지는 좀 잘라 키를 낮추고, 모종 삽으로 사방 뿌리를 끊어 힘을 빼주니 고춧대 뽑기가 훨씬 수월하다. 진하다 못해 까맣게 반들거리는 가지도 두어 개 따 바구니에 담았다. 열매도 작고, 잎도 누렇게 변해 힘이 없을 것 같았는데 온몸에 작은 가시는 꽤 성하다. 가시 없는 밑동을 잡아 뽑았다. 뿌리에 묻은 흙을 털어 내도 묵직한 것이 작은 나무 같다. 소면 굵기 부추도 잎끝까지 바트게 잘라 모으니, 한 주먹이나 된다. 다른 작물보다 키우기 수월하고 풍성해서 이른 여름부터 쌈채로, 전으로, 김치로 행복을 주었던 깻잎은 아직도 마른 잎과 뿌리까지 그 향이 진하다.
따뜻한 햇볕 기다려 점심 전에 시작한 텃밭 갈무리가 오후 늦게서야 끝났다. 크지 않은 텃밭이지만 또 한 해 바삐 걸어 다녔다. 사다 먹는 게 더 합리적이라는 친구들 말 때문이 아니어도, 매년 나도 “내년엔 하지 말아야지“ 한다. 그래도 다시 봄이 오면 씨를 준비하고, 밭에 거름흙을 더해 갈아주고, 손꼽아 봄 햇살을 기다린다. 넘치는 수확은 아니어도 풀내음으로, 고운 빛깔 꽃으로, 오늘처럼 적당한 노동으로 그 계절을 흠뻑 느끼며 얻는 기쁨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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