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를 마치고 취업을 선택했다. 공부는 할 만큼 했다 생각했고, 박사 학위에 도전할 만큼 머리가 뛰어나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취업을 하기로 결심을 하고, 생각했다. 과연 어떤 기준으로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 걸까. 나는 직업을 선택함에 있어서 세가지 기준을 두었다. 일의 내용, 급여 그리고 그 일을 함께하는 사람이다. 조금씩 비율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 세가지 기준 중에 두가지 이상을 만족하는 직장이라면 다녀야 하는 것이 맞고, 두가지 이상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미련없이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첫 직장은 일본 씨티은행 본점 미들오피스였다. 처음 1년은 매일 OJT(On-the-job training)와 해외연수로 이렇다 할 직장생활을 경험하지 못했다. 3년차가 되니, 일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내 일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다. 새로운 업무를 진행한다기보다는 정해진 룰과 엄격한 거래시간을 지켜야 하는 은행일은 내 성격과 맞지 않았고, 직장 상사의 과한 기대와 관심은 나를 힘들게 했다. 내가 생각하는 직장 선정 세가지 기준 중에 두가지를 만족하지 못했으니 직장을 옮겨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옮긴 곳은 딜로이트라는 회사의 컨설팅 부문이였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지만, 낮과 밤 구별이 없는 업무는 꽤나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에는 직장생활이 곧 나의 행복이고, 직장 선택의 기준이 마치 내 삶의 행복의 기준이였다. 그렇게 몇 년을 더 일을 하고 미국으로 오게 되면서, 이런 생활은 잊혀져 갔다.
결혼을 하고, 두살이 막 지난 아들과 돌도 되지 않은 둘째아들을 돌보면서 과연 나는 행복한가, 지금 나에게 행복의 기준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해본다. 그렇게 따지면, 나는 지금 ‘육아’라는 일을 하는 것이고, 월급은 무급이며, 육아를 함께하는 사람은 남편이다. 젊은 날의 직장 선택기준을 적용한다면, 급여가 없으니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남편과 다투기라도 한 날이면, 나의 기준 중 ‘함께 일하는 사람’이라는 카테고리도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때로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너무 힘이 들어 ‘육아’라는 일의 내용마저도 맘에 들지 않을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직장이 아닌, 육아가 아닌 나의 삶에 있어 행복의 기준은 무엇인가. 나를 둘러싼 그 어떤 환경에도 좌우되지 않는 절대적인 나의 행복. 이제는 그 해답을 찾아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안세라(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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