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친구가 방금 구웠다며 쿠키 한 접시를 들고 왔다. 아직 따뜻한 쿠키와 차 한잔을 놓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친구가 옆방의 플라스틱 건조대를 보며 의아해했다. 실내에 주렁주렁 빨래가 널려있기 때문이었다.
“드라이어가 고장난 건 아니야”라고 하니 “그러면 왜 난민촌 사람들처럼 빨래를 방에서 말리느냐”는 질문이 튀어 나왔다.
환경오염에 따른 기후변화를 줄이려는 의도에서 내가 지키는 몇 개의 습관이 있는데, 모두 남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수 있는 자잘한 일상의 습관들이다. 그중의 하나가 세탁기에서 꺼낸 빨래를 햇볕에 말리는 것이다.
과거 단독주택에 살았을 때는 이웃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널찍한 뒷마당에 건조대를 놓고 빨래를 말렸다. 쨍쨍한 햇살에 한나절만 말리면 빨래가 바짝 마르면서, 뽀송뽀송한 촉감도, 신선한 냄새도 좋았고, 젖은 빨래 속에 잠복해 있을 세균도 제거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였다. 또 한가지, 햇볕은 공짜여서 드라이어 사용에 들어가는 에너지가 절약되고 따라서 전기 값 부담이 적어진다는 계산도 있었다.
지금은 뒷마당이 없는 콘도에서 살지만, 오전에 햇볕이 들어오는 실내에서 창문을 활짝 열고 빨래를 말리는 습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 같은 햇볕 사랑, 에너지절약, 비용절감이라는 세가지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런 해명에 대해 친구는 고개를 저었다. 나의 이런 습관은 과학적 지식이 부족한데서 나온 것이라며 햇볕이 공짜인 것은 사실이지만, 햇볕 속 공기가 얼마나 오염되어있는가를 아느냐고 물었다. 활짝 개인 날에는 공기도 맑고 깨끗해 보이지만,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는 물론이고, 눈에 뚜렷이 보이는 해로운 먼지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차를 2~3일만 거리에 주차해 놓으면, 비눗물로 닦아야 씻어낼 수 있는 찐득한 물질로 덮여 있는데, 그런 오염된 공기가 햇볕에 널어놓은 옷 속으로 스며든다는 것이다. 에너지 낭비와 환경오염을 줄인다는 기특한 생각에서 나왔겠지만, 건강을 생각해서 지금부터라도, 드라이어를 사용하라는 충고였다. 얘기를 듣고 보니, 그의 주장과 내 믿음 중 어느 쪽에 과학적 근거가 있는지 헷갈리게 되었다.
기후변화, 자연파괴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라는 공감대는 커지고 있지만,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에 대해서는 일치된 의견이 없고, 지구촌 차원의 대책도 충분치 못한 것이 현실이다.
한편에서는 현재 인류가 겪고 있는 기후변화는, 수십억년 동안 불덩어리에서 얼음덩어리 상태를 거치며 지구라는 행성에서 진행되고 있는 변화의 한 국면이어서, 사람의 힘으로 조절할 수 없는 자연현상이라는 주장이고, 반대쪽에서는, 문명의 발달과 함께 인간의 무분별한 자원개발과 에너지 남용에 따른 자연 파괴의 필연적 결과라는 주장이다.
진짜 원인이 어떤 것이었든 캘리포니아에서는 기후변화의 결과로 대규모 산불 재난이 연례행사처럼 되었다. 금년에도 것잡을 수 없는 불길 때문에 단전조치가 여러 번 있었고, 내가 사는 동네에도 지난달에 사흘 이상 전기가 차단되었다. 스위치만 올리면 어둠을 밝히고 난방, 세탁, 조리가 자동적인 편리한 생활이 불가능하게 되니, 비로소 현대인들이 얼마나 문명의 혜택을 당연시 하면서 살고 있는지 알게 되었 다.
동시에 예측 불가능한 자연재해 때문에 문명인의 생활이 한순간에 난민생활로 추락할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기후변화에 따르는 대규모 재난을 예방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라고 믿었던 ‘난민촌’ 습관 하나를 계속 유지해야 할지, 버려야 할지 마음을 못 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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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진 교육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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