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블랙 프라이데이 쇼핑을 갔다. 약 20여년 전, 블랙 프라이데이에 뭘 그렇게 싸게 팔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고, 기왕이면 필요한 물건을 착한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여, 지금은 기억조차 희미해져 버린 어느 상점 문 앞에서 우리 가족은 긴 줄을 섰던 것이다. 텔레비전인지 비디오 카메라인지 파격적인 가격을 기대하며 가족들은 그 긴 행렬에 몸을 맡기고 장장 3시간 동안 꼼짝않고 서서 기다렸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는 순간, 기대와 허탈감이 동시에 찾아왔다. 솔드 아웃! 소리와 함께 뒤에서 밀려드는 인파로 내 아이는 넘어지기까지 했다. 그날 블랙 프라이데이의 기억은 말 그대로 검은색의 깜깜함을 맛보는 날이었다. 그 이후로는 의도적으로 난 이 날을 기억하지 않으려 했던 것 같고, 두번 다시 이 날에 줄을 서는 어리석음을 보이지 않았다.
세월은 기억도 흐리게 해주는 듯 며칠 전 집에 도착한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 광고지를 쥐고 늦은 밤 백화점을 찾았다. 백화점에 도착할 때쯤 되어 만일 주차할 곳이 없으면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오자 결심하며 기대반 포기반으로 그곳을 향했다. 시간은 밤 10시, 생각보다 주차할 곳이 많았다. 백화점 내는 조금 복잡하기는 했지만 긴 행렬의 줄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100가지 음식을 스스로 알아서 해준다는 인스탄트 팟 큰 사이즈를 67% 할인이라는 큰 혜택을 맛보며 구입했다. 그런데 순간 “앗 어떻게 들고가지?” 고민을 했다. 그러나 그 생각도 잠시, 눈치 빠른 종업원은 직원이 도와줄 거라며 연락을 급히 취했고, 곧바로 키다리 아저씨가 달리를 가지고 등장했다. 어릴 적 동화 속에서 읽었던 그 친절한 키다리 아저씨는 나에게 아주 유쾌한 표정으로 말을 건네며 큰 달리에 달랑 하나 내 물건을 싣고 자동차까지 옮겨다 주었다. 그리 비싸지도 않는 물건 하나를 친절하게 배달까지 해주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뭐 좀 다른 거라도 하나 더 살 걸….
아픔의 기억들을 치유받은 오늘의 블랙 프라이데이 쇼핑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딸에게 물었다. “너는 블랙 프라이데인데 어디 쇼핑이라도 안 가니?” 했더니 딸은 “엄마, 난 벌써 온라인으로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 상품을 오더했어”라고 대답했다. 백화점에 사람이 몰리지 않게 만든 것은 바로 온라인 구매라는 것을 깨달으며, 세월의 흐름과 시대의 변화를 절감해 본다.
<엄영미(SF갓스이미지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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