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라의 줄은 항상 길다. 자주 가는 그로서리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기는 쉽지 않다. 뭔가 특별한 것이 있기에 나도, 다른 이들도 로라의 이름을 많이들 알고 있다. 상냥한 미소는 기본이고, 한두 번 마주친 후엔 지난 대화의 내용까지 기억해 되묻곤 한다. 물건을 담을 때도 이것저것 섞어 담지 않고, 냉동제품, 신선 제품 구별해 담아주고, 무거운 것은 아래에 가벼운 것은 위에 담아 물건이 상하지 않게 한다. 그래도 난 가끔 길고, 쉽게 줄지 않는 그녀의 카운터를 피해 보려 하지만 호탕한 그녀의 목소리는 늘 나를 로라의 줄에 멈추게 한다.
재미삼아 하나, 둘 설치되나 했는데 이제 꽤 많은 상점에 셀프 체크 라인이 자리를 잡았고, 사람들도 능숙하게 이용하고 있다. 무인점포가 속속 등장하고 있고,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은 이제 사이버 먼데이 세일의 인기에 그 자리를 양보했다고 한다. 더이상 사람과 사람이 만나지 않아도 돌아가는 세상. 세상은 변하고 있다. 그것도 너무 빨라 따라잡기가 힘들다. 로봇은 병원에선 사람보다 정확하게 환자를 수술하고, 전쟁터에선 위험천만한 첩보 업무를 대신 수행하며 공장의 조립 라인에서는 사람보다 몇 배 빠른 실력으로 그 역할을 해 내고 있다. “시리(Siri) ”,“빅스비(Bixby)” 그리고 “알렉사(Alexa)” 등의 인공지능, A.I.(Artificial intelligence)는 기계가 가지는 속도와 편안함을 넘어, 말 한마디로 모든 일을 처리해 줄 뿐 아니라 사람의 행동을 관찰하고 진위를 판단하고, 외로워하는 인간에겐 위로의 말까지 건네는 그런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
빠르고, 산뜻한 대답을 주고, 언제 어디서나 내가 원할 때 만날 수 있는 A.I.와의 미래, 아마도 그 큰 물결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난 사람과의 세상살이에 미련이 많다. 눈을 맞추어 이야기하고, 통계에 의한 정확한 판단보다는 색다른 생각도 하고, 즉답보단 시간을 통해 답을 얻고, 혼자가 아니고 여럿이 함께해야 되는 그런 세상.
로라가 가지고 있는 사람에 대한 관심, 상대에 대한 배려, 그런 것들이 A.I.와의 삶과는 다른, 인간만이 경험할 수 있는 삶을 살게 하지 싶다. 로라가 찡끗 눈웃음을 지으며 내 안으로 들어온다. 또 다른 인간과의 만남. 아직 난, 사람 속에 살고 싶다.
<박명혜(전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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