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에 원고를 쓰기로 맘을 먹으니 기자는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서를 부탁했다. 100자 분량의 짧은 내용이었기에 첨엔 별것 아니라 생각했다. 하지만 쓰고 지우기를 여러 번, 쉽지 않았다. 학교에 다닐 때라면 어느 학교 다니는 몇 학년 몇 반, 누구라고 밝히면 그뿐일 테고, 일을 할 때라면 어떤 파트에서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면 될 터이다. 그러나 특별한 소속이 없는 현재, 짧지만 함축적으로 나를 소개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몇 살의 아무개 이름만으로 표현하고 싶지 않은 맘에, 고민해 본다. “나는 누구인가?”, “어떤 사람일까?” 생각하다 보니, 어쩌면 내 모습은 나와 관계를 맺은 남들의 눈 속에서 제대로 찾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에릭 호비츠는 한 달 동안 MSN 메신저 사용자 1억 8천만 명을 조사, 연구했는데, 사람들은 평균 6.6 단계를 거치면 서로 연결 지어진다고 한다. 이 연구 결과 때문이 아니더라도 실제로 SNS(Social Network Service)를 사용하다 보면 연결되는 의외의 관계에 놀라기도 한다. 또 한인사회는 몇 사람만 건너면 얼굴은 모르더라도 들어본 적 있는 사이가 꽤 있다. 직접 만나 세월을 쌓지 않아도 관계가 형성되는 세상이다. 이렇게 따져보면 굳이 소개말이 필요할까도 싶지만 한국일보에 글을 쓴 3개월의 시간은 분명 나를 소개할 꽤 좋은 기회였지 싶다.
3개월 동안 매주 내가 경험하고, 생각하는 세상을 글로 쓸 수 있어 참 좋았다. 말이 아니라, 생각을 정리하고, 고쳐 쓸 수 있어 좋았다. 때론 천자 남짓한 분량에 다 담아내지 못해 속이 상하다가도 자꾸 읽다 보면 덜어낼 말이 많다는 걸 깨달아 좋았다. 가을부터 겨울까지 계절을 꼼꼼히 느낄 수 있어 또 좋았다.
김영하 작가는 ‘여행의 이유’라는 책에서 여행은 자신을 특별하게 분류되는 섬바디(Somebody)에서 결국은 아무것도 아닌 노바디(Nobody)로의 변화를 느끼게 한다고 표현했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특별한 사람이 되려 살지만 결국은 모두 아무것도 아닌 노바디로 인생을 마감하게 된다. 글을 마무리하는 지금, 나는 자기소개서에 특별한 소개말 대신 “친절한, 따뜻한 또는 잘 웃는 이런 말로 표현 되어지는 노바디가 되려고 하루하루 노력하고 산다”라고 쓰고 싶다.
<박명혜 (전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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