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오십. 백의 반! 이렇게 나열하니 뭔가 대단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저 내가 살아온 날들이다. 누군가는 앞의 숫자가 5로 바뀔 때 기분이 어떠냐고, 이상하지 않냐고 물어오지만, 원체 무심한 성격탓인지 별 감흥없이 여느 때와 같이 매년 마주하게 되는 생일처럼 오십 생일을 지냈다. 오십 생일이 되던 그날의 기억을 되짚어보니, 반 백의 특별한 생일이라는 자각보다는 생일케이크에 꽂는 초가 단촐해서 보기 좋았었다 정도와 별탈없이 지금까지 나와 함께 견뎌내어준 그나마 건강한 나의 몸에 대한 감사함 정도이다.
그럼에도 반 백살이면 뭔가가 다르게 느껴져야만 할 것 같은 은근한 떠밀림에 되돌아보니,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80-90의 삶을 살아내신 부모님과 어르신들이 새삼 존경스러워졌다. 왜 평소에도 존경하지 않았겠냐마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반 백의 삶을 이렇게도 장황하게 나열하게 만든 이유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나야 백의 반이라지만 이 연세의 어르신들은 백년이 가까운 세월을 모두들 각자의 자리에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낸 삶의 결과로 지금 그 자리에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분들의 반을 살아보니 백년이 가까운 그 시간을 그저 그렇게 살아온 것이 아닌 결코 쉽지도, 꽃길만을 걷지도 않았음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그 삶에 더욱 존경심이 생긴다.
매년 돌아오는 날들이 뭐 그리 새롭겠냐마는 연말이면 의식과도 같이 지난 한 해 잘 살아왔음을, 또 새로운 한 해 잘 살아내주기를 인사로 주고받는다. 뭔가를 매듭짓고 또 다른 시작을 알리기 위한 시점이다. 나 또한 40대를 매듭짓고 50대의 새로운 시작을 하며 나를 묵묵히 따라온 반백의 발자취를 돌이켜보니, 아직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그냥저냥 살아온 것이 아니라 나름 노력하며 부끄럼없이 살고자 애써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게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그렇게 애쓰며 지나온 그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노라고, 참 잘 견디며 잘 살아왔노라고, 또 앞으로 살아낼 그 길을 혼자 걷는 길이 아님을 잊지 말라고, 지금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과 반 백을 지나는 나 자신을 응원하며 짧고 작은 위로를 함께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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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유치원 교사로 활동한 권초향씨는 지금은 버클리 열린교회 사모로 살고 있는 평범한 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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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초향(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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