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로운 오후, 한 청년이 출출함을 달래기 위해 편의점을 찾았다. 딸랑, 편의점에는 주인아줌마뿐. 청년은 바구니에 간단히 요기할 것들을 담기 시작했다. 핫바, 컵라면, 삼각김밥. 한참을 담던 청년은 이번엔 목이 말랐는지 음료수칸 냉장고 앞으로 갔다. 그리고 시원한 캔 사이다 하나를 꺼내 들었다. 딸깍. 그 자리에서 캔을 따고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했다. 이를 바라보던 주인아줌마가 황당하다는 듯이 “이봐, 젊은이. 계산도 하지 않고 마시면 어떡하나! 계산부터 해야지!”라고 말했다. 그러자 젊은 청년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어차피 계산할건데 지금 마시나 후에 마시나 무슨 차이예요. 손님 마음이지 뭐…”라며 대꾸했다.
앞에 상황 속 청년을 다시 생각해보자. 어쩌면 그 청년은 돈을 내고 사는 입장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자유(?)로 지금의 상황을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손님의 자유, 내지는 ‘본인의 자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유’를 외치며, 마음대로 행동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함께 공존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 속에 각 개인마다 자신만의 ‘자유’를 고집한다면 세상은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여기서 ‘자유’와 비슷한 단어인 ‘자율’을 생각해 보자. ‘자율’은 무엇인가? 자신의 욕망이나 남의 명령에 의존하지 않고 실천적 이성에 의하여 스스로 세운 객관적인 도덕법칙을 따르는 일을 뜻한다. 쉽게 설명하면 ‘자유’는 울타리가 전혀 없는 곳에서의 누림이고, ‘자율’은 울타리가 있는 곳에서의 누림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럼 ‘자유’와 ‘자율’은 무슨 관계를 가지고 있을까? 사람은 오래 전부터 사회라는 울타리 속에서 무리를 지으며 살아왔고, 그 무리 안에서 서로의 공존을 위해 자연스레 규칙과 도덕이 생겨났을 것이다. 그러면서 ‘자율’도 함께 생겨나며 사람들은 그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느끼며 살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탐욕’도 있었기에 ‘자율’을 빙자한 지배가 시작되었고, 그것을 막기 위해 ‘자유’를 내세웠을 것이다. 그렇게 ‘자유’가 왜곡되어져 간 것이다.
이제껏 ‘자유’의 참된 사용법을 간과하며 살아왔다면 지금이라도 공동체적 울타리 안에서 마음껏 누리며 사는 것이 참으로 ‘자유’를 다시 멋지게 사용하는 방법이 아닐까?
<정다연(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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