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엔지가 떠나기 전 굿바이를 하고 싶다고 목요일 문자메시지를 보내왔기에 따뜻한 유자차를 내어갔다. 지금처럼 쉽사리 만나지 못할 친구에 대한 마지막 배려의 인사였으며 15년간 교류 이상의 우정을 나눠온 사이를 아쉬워하는 마음의 표현이었다. 엔지는 동갑내기, 뒷채에 사는 데니스는 두살 아래, 자매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산호세로 이사온 시점은 눈부셨던 30대 시절. 같이 한 드라이브웨이(Driveway)를 드나들다 보니 친자매처럼 마음을 나눈 이들은 있는 모습 그대로를 내보일 수 있었던 귀한 친구들이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중략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놓고 보일 수 있고 악의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은 친구가...” 유안진 작가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란 시처럼 우리는 15년간 서로 허물이 없었다.
얼마 전 데니스가 음식 데우는 기기를 켜두고 출근하다 불날 뻔한 상황에 SOS, 내가 데니스 집 시큐리티 코드를 누르고 들어가 간신히 작동을 금지시켰다. 이사로 바쁜 데니스가 냉장고를 비워야 한다며 음식물 몇 가지를 들고 우리집으로 건너왔다. 나는 뜻밖에 싱싱한 유기농 고기와 연어, 야채를 얻는 땡을 잡았고, 버리기 아까운 음식을 처리한 친구는 발걸음도 가벼웠다. 매년 엔지와 데니스는 휴가 떠나기 전 정원 물주기, 와인 택배받기 등의 부탁을 했다. 나도 한국에 갈 일이 생기면 정원에 물주기와 더불어 집 잘 봐달라고 자연스레 부탁했다.
이제 세상도, 우리도 변해 친구를 만나려면 선약을 해야 하고, 즉흥적이거나 돌발적인 행동은 결례가 되는 시대가 됐다. 식사 후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 마시며 공허한 마음을 내보일 친구가 그리 많지 않아진 것이다. 지란지교(지초와 난초의 사귐 ,향기로운 지란처럼 맑고 깨끗한 우정을 일컫는 사자성어), 15년동안 서로를 내보여도 허물이 되지 않았던 친구들이 떠나가면 자주 만남을 갖기는 어렵겠지만 그동안 누렸던 고운 추억을 곱씹으며 살아야 할 것 같다. 지금의 자리에서 허물없이 따뜻한 차 한잔 내어주며, 있는 모습 그대로를 드러낼 지란지교의 사귐이 또다시 찾아올까, 나는 다시 꿈꾼다.
<정보경(연방정부 컨트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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