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었다. 생각이 깊어질수록 더 길을 잃었다. 혼란스러워졌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내 이름으로 불려지기보다는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로 불려졌다. 내가 서있는 장소와 맡은 역할에 따라 나는 그 사람이 되어야만 했다. 그래야만 잘살아가는 것이고 훌륭해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나를 내세우기보다는 위로는 어른을 공경해야 했고, 엄마로서 아이들을 잘 길러내고, 나의 비전보다는 남편의 일을 우선시해야만 했다.
현모양처가 장래희망이던 세대였으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 우리의 부모님 세대가 그렇게 살아왔고 자연스럽게 호흡하듯 나의 삶 속에도 당연하단 듯이 스며들었다. 난 모든 것이 괜찮았다. 아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괜찮아야만 했다. 내가 괜찮지 않으면 많은 일들이 괜찮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괜찮아야만 했고, 괜찮다고 생각함으로 난 괜찮았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 쏟아져 나오는 모든 미디어들은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한다. 그렇게 살면 내가 없어지고 불행하고 후회할 거라 말들 한다.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나를 찾아야 한다고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난 나를 잃고 살았던 것일까? 내 이름 대신 나를 지칭하던 그 이름들은 내가 아니였을까? 정말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의 링반데룽(Ringwanderung)에 빠졌다. 등산 중 길을 잃고 헤맬 때 지금까지 온 길을 그리며 되짚어 가는데 좀처럼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그 주변에서 둥근 원을 그리며 걷는 것을 링반데룽이라고 한다. 링반데룽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내가 서있는 곳을 알게 될 때까지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나 또한 나의 선 자리를 지키며 확인했을 때 비로소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나에게 주어졌던 다른 이름들은 그 어떤 누구도 아닌 나의 선택이였다. 내가 괜찮음으로 모든 것이 괜찮다고 이게 맞다고 토닥이며 쌓아왔던 견고한 내 삶의 성은, 내가 길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지탱해 주었던 힘이였다.
내 삶을 조난당하게 둘 순 없다.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면 그게 얼마나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였는지를 생각해 보라는 박완서님의 글을 인용하자면, 난 괜찮다. 괜찮다. 아무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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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초향(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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