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에 있는 막내동생이 첫아기를 출산했다. 동시에 나에게도 첫 조카가 생기게 되었다. 출산 후 가보지 못한다는 미안함과 수고했다는 격려를 위해 영상 통화하게 되었는데, 영상 속에 조카는 아주 조그마한 얼굴에 배냇짓을 하면서 자고 있는 사랑스러운 천사와 같았다. 조카를 보고 있노라면 내 아이와의 첫 만남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하염없이 애기 같던 내 딸이 어느새 정말 많이 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끔 동생이 나에게 ‘언니 이럴 땐 어떻게 했어?’ 하며 육아 조언을 구할 때마다 내 아이의 어릴 적 모습이 어렴풋이 많이 그려졌다.
아이와 첫 대면을 하던 때, 아이를 산후조리원에서 집으로 데리고 오던 날, 아이의 첫 예방접종일, 그리고 걸음마를 떼던 날들. 아이를 키우면서 잊을 수 없을 만큼 새로웠던 장면들이 그려졌다. 그러면서 문득 지난날 육아에만 집중을 하던 때도 생각이 났다. 그 당시에는 ‘나’라는 사람의 생활은 없어지고, 매일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다시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를 반복하는 때였다. 어쩌면 아이를 키우면서 제일 힘들고 어둡던 때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날마다 ‘이 아기를 언제 다 키우지?, 언제쯤이면 이 생활이 끝나는 거야?’ 하는 생각 속에 살았었다.
출산 전에는 아기가 태어나 군것질을 할 때가 온다면 좋아하는 초콜릿을 많이 사놓고 둘이 앉아 맛있게 먹는, 이상하지만 나름 행복한 꿈이 있었다. 그러나 막상 아이를 낳아놓고 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런 꿈은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것은 흘러가기 마련인데 그때는 앞에 있는 것을 위해 아등바등 살며, 암담한 생각 속에 살았기 때문에 힘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돌아보니 내가 꿈꿔왔던 모습이 이루어져 있었다. 아니, 더 풍성하고 재밌게 이루어져 있었다. 이만치 큰 나의 아이는 나에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있었으며, 내가 좋아하는 초콜릿을 함께 좋아하고 둘이 붙어 앉아 서로 군것질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앞으로 더 행복하고 다이내믹할 동생과 조카의 모습도 기대가 되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에 따른 행복감은 비할 데 없이 크게 우리에게 찾아온다. 그만큼 새로운 가족이 생긴다는 것,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큰 축복이 우리 가운데 찾아온다는 것은 아닐까?
<정다연(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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