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가 하나 있다. 나처럼 수능 점수에 맞춰 들어온 것이 아닌, 문학 특기자 전형으로 국어국문과에 입학한 인재였다. 소설을 써서 대학에 들어올 수도 있다는 걸, 그 친구를 만나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 애는 첫 수업부터 쨍한 보라색 미니 원피스에 아찔한 하이힐을 장착하고 등장했다. 우연히 옆자리에 나란히 앉게 되지 않았더라면, 나 같은 풋내기와는 영영 상대해주지도 않았으리라.
그녀에게는 옷차림만큼 강렬한 개성이 있었고, 어린 나이에 재능을 인정 받은 사람 특유의 자신감이 있었다. 내가 갓 태어난 참새처럼 세상 물정 몰랐다면, 그녀는 일찍 일어나 멀리 나는 갈매기였다. 고작 스무 살에 전업 작가가 되겠다고 당차게 선언할 정도였다. 단언컨대, 그 애의 스무 살은 다른 이들의 스무 살보다 훨씬 멋진 것이었다. 그후의 나날들도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학부 시절 내내 우리를 괴롭힌 취업난과 불황 속에서, 전업 작가가 되겠다는 포부는 꿈 아닌 망상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글쓰기에 집중하겠다며 학부 내내 교직 이수에 사활을 걸었다. 그러나 졸업 후, 초임 선생님에게만 궂은 일을 도맡아 시키는 시골 학교에 발령을 받아 응급실에 실려갈 정도로 격무에 시달렸다. 그 외롭고 힘든 타향 살이에 위로가 되어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둘 사이에 금방 아이가 생겼지만, 남자는 자신의 아들이 워킹맘 밑에 크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의 부모님이 맞벌이 부부였던 탓에 본인의 유년기가 외로웠다는 이유였다. 친구는 저항했지만, 싸움이 점점 커져 결혼 생활을 위협할 지경이 되자 가정을 선택했다. 수입이 절반이 된 살림은 빠듯하고, 남편은 육아나 가사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다. 이제 일곱 살 된 아들은 유난히 잠이 없고, 그녀에게는 자기 책상조차 없다. 잘 지내느냐 묻는 내 말에, 살만하다 한다. 글은 쓰고 있느냐 묻자, 농담인 줄 안다.
이제 우리는 인생이 반짝이는 것들에 대한 애도로 이루어져 있음을 안다. 그렇기에 친구가 소중한 것을 삶의 어느 모퉁이에 내려놓고 왔다 해도,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음을 이해한다. 불혹에 미치지도 못한 이 날까지, 우리는 얼마나 빨리 남루해졌는가?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사는 게 그렇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현주 (주부)>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총 1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인생은 새옹지마. 이런 시련의 기간으로 인해서 나이 들어 더 완숙한 작가로 우뚝 서게 될지 그 누가 알겠습니까? 특히 글 쓰는 일은 정년이 없으니, 길게 내다 봐야 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