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상사가 인상을 쓰며 “우리는 투자자가 원하는 것만 쓰면 돼!”라고 나무랐다. 어떤 대기업 주주총회 대리 투표권에 반대표를 추천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들이 다음 해에 하고자 하는 새 업종들을 보고하는 항목에, 중소기업들이 이미 하고 있는, 자그마치 70개가 넘는 자잘한 업종을 더 추가하겠다는 것이었다. 내 성격과 맞지 않은 상사도 싫은데, 대기업들의 문어발 확장을 추천하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나의 엘리트 금융분석가 직업은 짧게 막을 내렸다. “왜 가진 자들은 그들의 활동 범위를 약육강식 방법으로 넓혀야 하니? 생각의 범위가 그것밖에 안돼?”라고 이제야 뱉어본다.
미국에서 잘 살다가 몇 년 전 한국으로 귀환한 지인이 생각난다. 50살이 되던 해에 뜻하지 않은 은퇴를 하게 된 그분은 워낙 머리도 좋고 활발하며, 몇가지 사업 아이디어도 있었기에 의아했다. “스트레스 받느니 그냥 쉬는 게 나와 남을 돕는 거야”라며 애써 표정을 바꿔, “조선시대 양반들은 그 많은 시간을 문화와 예술로 즐겨야만 했다”며 화제를 돌렸다. 양반들은 과거를 봐서 공무원이 되거나, 술을 마시며 시를 읊는 백수건달로 평생을 살아야 했다. 지금은 마치 신분으로 모든 게 통제된 조선시대로 돌아온 느낌이랄까...뭔가 하고 싶어도 못하고 있는 양반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코로나로 더 빨리 진행되고 있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인간이 할 일들은 줄어들고 있다. 소수의 필수 노동자들은 제대로 대우도 받지 못하며 몸이 부서져라 일하고 있고, 가방끈 긴 수많은 엘리트들은 집에서 빵을 굽고 있다. 욕심 많은 사람들이 로봇과 정치를 이용해 만들어 가고 있는 디스토피아가 멀지 않아 보인다. 지금같이 무기력한 세상에서 좁은 범위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의 생각뿐. 수많은 황당한 상황들 안에서 인간은 늘 혁신을 만들어 왔다. 조선시대에 천민으로 태어나 우리에게 천문 기구를 선물해준 장영실도 있고, 사형수로 감옥에 갇혀 전 세계 명작을 쓰기 시작한 도스토예프스키도 있다. 그들의 몸은 없어도 그들이 창작한 것은 영원히 남았다. 팬데믹이라는 무서운 범위 안에서 우리는 그전에 알지 못한 상상의 한계들을 뛰어넘어 본다.
<엘렌 홍 (에스닉미디어 대외언론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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