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료품을 사려고 퀸즈의 한인 마켓에 갔다. 야채부에 들러 사과를 사려는 데, 앞에서 한 오십쯤 되어 보이시는 남자분이 사과를 열심히 고르고 있었다. 한 발짝 떨어져서 그 분이 고르기를 기다리며 서있는데, 거의 위아래 사과를 뒤집고 또 헤치고… 사과가 아프다고 신음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나는 그만 발길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절친인 친구와 차 한잔 마시면서 우연히 마켓의 그 아저씨에 대해 얘기를 했다. 내가 조금 예쁘지 않고 품질이 좋지 않은 사과를 고르면 다음 사람이 좋은 사과를 먹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더니, 그 친구의 반응은 거의 폭발적이었다. 너무 큰 소리로 웃으며 손사레를 치는 그녀의 눈에서는 이슬 같은 눈물이 맺힐 정도였다.
휴지로 눈물을 찍어 내며, 잠시 숨을 고른 후에 그녀가 말했다. “나도 그래” 하면서 다시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녀의 웃음 속에는 다소 아름답지 못했던 행동에 대한 계면쩍고 후회스러운 모습이 배어 있었다.
“나도 다음부터는 위에서부터 손길도 부드럽게 조심조심 과일을 골라서 담아야겠다”고 미소 지으며 그 친구가 말했다. 우리의 생각은 일치를 보았다.
도토리 키재기 같은 일상의 무심코 하는 행동이 우리들을 불편하게 하기도 하고, 사람을 작게 보이게도 한다.
나는 마켓의 사과를 고르던 아저씨 모습과 함께, 오래 전, 에콰도르의 인디오 시장에서 만난 자두 파시던 인디오 할머니를 떠올렸다. 가난이 배인 쪼글쪼글한 얼굴에 호빗족을 연상케 하는 왜소한 체구를 하신 분이었다.
할머니가 좌판 위의 자두를 봉지에 담고 있을 때, 남편이 예쁜 자두를 한 두 개 골라서 같은 봉지에 함께 담았는데, 그때 “내게도 손이 있소(Yo tengo mano)” 하는 우람하고 굵은 할머니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남편의 붉어진 얼굴을 보면서 나도 함께 부끄러웠던 옛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는 지금도 과일 가게에 들르면 “내게도 손이 있소!”라는 의미 심장한 할머니의 그 말을 상기(惻起)하며 두 눈을 마주 치며 소리 없이 웃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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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우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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