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와서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은 기다리는 일이었고 귀찮은 것은 예약을 만드는 것이었다. 가장 짜증날 때는 늘 은행에서였다. 한참 기다려 차례가 오면 직원은 브레이크 타임인지 창구를 닫았다. 창구직원이 허락받으러 수퍼바이저한테 갔다오면 어찌나 오래 걸리던지! 매니저한테라도 가면 걸음은 더 느려졌다. 신호 대기에 서 있는 보행자들 걸음도 재촉함이 없다. 음식점도 고급일수록 더 기다려야 했다. 한국에서는 급하면 뛰어가는데 여기서는 누가 뛰면 혹시 화재인가 주변을 살핀다. 그러고 보니 뛰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여기서 자란 딸들도 아침 등굣길에 빨리빨리 서두르면 질색을 하고 나를 성급한 사람으로 몰아세웠다.
보스턴의 찰스 스트릿과 이웃한 동네는 오래된 붉은 벽돌 건물에 담쟁이가 어우러져 고풍스러웠다. 택시는 날 비콘힐에 내려놓고 갔다. 나는 해리포터 속에 나오는 듯한 62개의 가파른 계단을 올라 4층까지 올라갔다. 그 건물은 옛것을 보존하느라 엘레베이터도 없었다. 올라가니 딸은 갓난 손자를 안고 았었다. 아기 돌보고 음식 만들기로 시간을 보내다 빨래 좀 도우려 왕복 백개도 넘는 계단을 밟으며 아이 데리고 살기에는 그 집이 전혀 합당치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있을 때 아예 이사하자고 권유하니 그러고 싶지만 너무 갑자기여서 불가능하다고 했다.
결국 애들이 아파트를 구하기로 하였고 나는 한국 이삿짐센터를 찾아 형편을 이야기하여 다음날 4시부터 저녁 이사를 해주겠다는 대답을 받아냈다. 평소에 알아본 아파트여서 입주 수속도 쉽게 끝났는데 막상 이사갈 아파트의 엘레베이터 사용시간을 허락받는 일 하나로 반나절을 소비하니 참으로 답답했다. 미국 회사에 비하면 절반도 안되는 경비로 귀중품만 챙기면 나머지는 모든 짐을 싸서 옮겨주는 이사를 할 수 있었던 것도 한국인의 정서에 스민 부지런함과 신속함 때문이리라. 오후 4시에 시작하여 밤 11시까지 모든 물건을 정리해주고 떠나는 서비스에 아이들은 너무도 신기해 했다. 애들에게 대한민국이 이렇게 고속성장을 할 수 있는 것은 한국인의 근면성과 빨리빨리 문화가 한몫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한국 브로커를 찾아 딸네집을 하루만에 임대시키는데도 성공했다. 그 일은 나만 보면 늘 성급하다고 생각하는 딸에게 빨리빨리가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집에 돌아와보니 메시지가 와 있었다. 엄마 빨리 와 빨리빨리!!
<강영혜 (아름다운 여인들의 모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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