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살쯤 되어보이는 여자아이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콩당콩당거리는 마음을 누르며 언덕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언덕길 끝에 있는 작은 구멍가게 아저씨가 그 아이를 보고 손짓을 하며 한쪽을 가리켰다. 그 손끝이 가리키는 곳에는 지프 차가 한 대 있었다. 그 아이를 보았는지 한 어른이 문을 열고 내렸다. 그 어른이 누구인지 알아챈 아이의 가슴은 더욱 크게 뛰었다. 어른은 손에 무엇인가를 들고 성큼성큼 아이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OO아, 잘 있었니?” “네.” “이거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아버지가 여기에 오기 싫었는데, 너 때문에 왔어”라며 입을 떼셨다. 얼마 전에 엄마와 크게 말다툼하고 집을 나가신 아버지였다. 미국 유학에서 아버지가 돌아오신 후론 무슨 이유인지 두 분의 다툼 소리가 집에서 떠나지 않았다.
갑자기 아버지는 “나는 들어오기 싫지만, 만약 네가 들어오라고 하면 집에 들어올게”라고 말을 하셨다. “괜찮아요, 저희는. 아버지가 들어오시기 싫으시면 안들어 오셔도 괜찮아요.” 아이는 그것이 진짜 아버지가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아이의 얼굴을 한동안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곤 “네가 나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네가. 그래 알았다” 하며 돌아서셨다. 잠시 후 차는 떠났고, 그 아이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작은 선물 상자를 들은 아이는 숨이 차도록 언덕을 뛰어올라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며 “엄마, 아버지한테 싫으시면 안들오셔도 된다고 했어”라고 큰소리로 말했다. “얘, 너는 맏딸 맞니? 어떻게 그렇게 생각이 없니?”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아이에게 엄마는 획 돌아앉으면서 차갑게 말했다. 아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뭔가 잘못했구나. 그것도 크게. 아이는 엄마에게 뭘 잘못했냐고 묻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도 다시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게 아버지를 본 마지막 크리스마스였다. 엄마가 아버지를 기다리고 계셨다는 것을 아이는 알지 못했다.
그 아이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그 큰 잘못 때문에 엄마에게는 남편의 역할을 하느라, 두 동생에게는 없어진 아빠를 대신하며 열심히 살았다. 그후 그 아이는 살면서 아주 오랫동안 이유도 없이 12월달만 되면 늘 몸이 아팠고 마음은 슬펐다.
<노신영 (가정사역 박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