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 모락모락 나는 갓 지은 밥에 동글동글 예쁘게 빚은 전, 보글보글 재료가 춤을 추는 찌개와 윤기 나는 고기찜, 푸릇푸릇 싱그러운 계절의 나물,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어머니의 정겨운 밥상이다. 대부분 어머니가 손수 키우시고 직접 발효시킨 건강한 재료로 만든 것들이다.
몇 년 전 한인 성당에서 만난 80대 중반의 어머니는 이 귀한 밥상을 종종 차려주셨다. 일요일, 성당에 오실 때면 뒷마당에서 딴 과일을 봉투에 가득 담아 주시기도 했고 오가며 지나는 길에 직접 담근 김치며 된장과 장아찌 등을 건네주시기도 했다. 코로나
격리기간에도 항상 먼저 안부 전화를 하시며 대문 앞에 각종 과일이며 반찬들을 잔뜩 놓아두셨다. 어느 날, 귀한 음식에 비해 너무 보잘것없는 내 죄송한 마음을 눈치채셨는지 어머니는 따뜻한 대구 사투리로 말씀하셨다. “아이고, 미안할 거 하나도 없다. 친정엄마 한국에 있으니 내를 미국 사는 친정엄마라 생각하이소. 앞으로 친정이다 생각하고 그냥 온나.” 이렇게 나는 어머니가 한 분 더 생겼고 정 많은 어머니 덕분에 열 살 많은 멋진 큰언니도 생겼다.
어머니 댁에서 함께하는 즐거운 식사 자리에 어울릴 음악을 생각해보니 문득 양청도드리가 떠오른다. 조선의 풍류 음악인 천년만세의 두 번째 곡이다. 1744년 영조 20년, 영조가 51세가 되어 기로소(耆老所)에 입소하게 된 기념으로 궁중에서 가장 큰 규모의 연향인 진연을 베풀었는데 이때 연주된 곡이다. 기로소는 국사와 하례에 관하여 왕의 자문을 맡은 기구로 왕과 관료는 나이가 들면 이곳에 입소할 수 있었다. 입소 날은 왕의 무사함을 기리며 백성과 즐거움을 함께한다는 뜻에서 큰 잔치를 베푸는데 즐거움만이 아니라 괴로움도 함께하는 의미로 전국의 노인들에게 쌀과 음식을 내려주고 세금을 탕감해주기도 했다.
경쾌하고 빠른 양청도드리는 국악기 중 유일하게 쇠줄을 가진 타현악기인 양금이 그 특유의 맑고 통통 튀는 소리를 내며 거문고가 중심이 된 음악에 단소와 함께 맛깔난 양념을 톡톡 뿌린다. 마치 따뜻한 집밥에 천연 양념처럼 곁들인 어머니의 재미난 옛이야기처럼 말이다. 며칠 전 힘든 수술도 거뜬히 이겨내신 어머니가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바라며 천년의 생명이 담긴 음악, 천년만세처럼 앞으로도 오래도록 어머니의 따뜻한 밥상과 함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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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화영 (가야금 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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