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주 39지구 연방하원 당선 영 김은 누구
▶ 로이스 의원 보좌관 21년… 한인여성 첫 가주 하원의원, 2018년 당선 눈앞에서 역전패… 재대결서 짜릿한 승리

영 김 당선자와 남편 찰스 김씨 부부 가족. [영 김 캠프 제공]

지난 2014년 주 하원의원 시절 영 김(오른쪽) 당선자가 주청사에서 크리스틴 올슨 당시 주 하원 공화당 원내대표와 의정활동을 논의하는 모습. [박상혁 기자]
“재도전 끝에 얻어낸 값진 승리… 두 번의 눈물은 없었다.”
연방하원 캘리포니아 39지구에 재도전해 마침내 연방의회 입성의 쾌거를 이룬 영 김(58·한국명 김영옥) 당선자는 사업가에서 주부로, 다시 정치인으로 변신한 자랑스러운 이민자로 불린다. 미셸 박 스틸(공화·캘리포니아주), 한국 이름 ‘순자’로 알려진 메릴린 스트릭랜드(민주·워싱턴주) 당선자와 3명이 함께 한인 여성 최초 연방의원 탄생이라는 신기원을 이루게 된 영 김 당선자는 앞서 지난 2014년 캘리포니아주 65지구 주 하원의원에 당선되면서 ‘한인 여성 최초 가주 하원의원’이 됐었다. 평범한 주부로 살던 그녀의 잠재력을 알아본 남편 찰스 김씨의 적극적인 지지로 김 후보는 에드 로이스 전 연방하원 외교위원장의 보좌관으로 21년을 활약하며 정치적 내공을 쌓았다. 김 후보는 지난 2018년 연방 하원 선거에서는 개표 당일 투표함 개표에선 크게 앞섰다가 개표된 우편투표 결과 때문에 민주당의 길 시스네로스 후보에게 아쉬운 역전패를 당했었지만, 이번 선거에서 시스네로스 현직 의원과 재대결을 펼쳐 치열한 접전을 벌인 끝에 승리했다. 미주 한인 정치 도전사의 새 역사를 쓴 영 김 당선자의 삶과 정치 도전기 및 의의를 정리해본다.
■성장기와 미국 이민
1962년 인천에서 태어난 영 김 당선자는 서울에서 자라나 1975년 가족들과 괌으로 이주한 한인 이민 1.5세다. 하와이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USC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은행의 재무 분석가, 스포츠 의류 브랜드 매니저 등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이어 숙녀복 브랜드를 띄워 사업가로 변신했다. 매장에 직접 쇼룸을 만들고 어깨 너머로 디자인도 배웠다고 한다.
USC 재학 시절 만난 남편 찰스 김씨는 선거전문가로 한미연합회를 창립해 전국 회장을 역임했고, 30년 이상 한인사회의 권익 증진, 정치력 향상을 위해 일했다. 슬하에는 1남 3녀, 4명의 자녀를 뒀다. 김 당선자는 올해 초 본보 인터뷰에서 “남편은 저의 정치 스승이자 동지이고, 가정에서 늘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좋은 파트너이자, 여러 모로 제게 가장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1등 후원자”라고 말했다.
■정치 입문
네 아이를 둔 주부로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그를 정계에 입문시킨 사람은 다름아닌 남편 찰스 김씨였다. 남편 김씨는 비영리단체 일을 하면서 친한파인 에드 로이스 의원과 오래도록 친하게 지냈고, 로이스 부부와 영 김 부부는 자주 식사도 하면서 친하게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로이스 의원이 남편을 통해 영 김에게 보좌관 자리를 제의했다. 남편이 적극 천거했고 사업가 출신의 주부였던 영 김은 정치에 발을 들이게 된다.
1990년 에드 로이스 의원이 가주 상원의원로 활동할 당시 지역보좌관으로 일을 시작했다. 1992년 로이스 의원이 39지구 연방하원으로 당선되면서 연방 의회에서 로이스 의원의 지역구 디렉터 겸 아시아 정책 담당국장으로 외교위원회에서 20년 이상 일하며 보좌관 및 수석보좌관으로 핵심적 역할을 맡았다.
특히 워싱턴 DC에서는 한미의원연맹 일을 도우면서 한국 정계에도 인맥을 넓혔다. 연방 의회에서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 탈북자 인권문제 등에 관심을 가지면서 한인사회와 미국 정치권 사이의 가교 역할을 했다. 라디오서울 등 한인 방송 진행자로도 활약했다.
■선출직 도전과 가주의회 진출
영 김 당선자가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선거에 도전한 것은 2014년이었다. 캘리포니아주 65지구 하원의원에 도전해 민주당 현역인 샤론 쿼크 실바 의원을 꺾는 이변을 연출하며 주 의회에 진출했다. 한인 여성으로 공화당 출신의 주 의원은 캘리포니아에서 처음이었다. 그러나 2년 뒤 열린 리매치에서는 실바 의원에게 석패했다.
이후 영 김은 오렌지카운티 수퍼바이저 선거를 준비했다. 2017년만해도 모든 게 카운티 수퍼바이저 선거에 맞춰져 있었다. 그런데 에드 로이스 의원이 갑자기 전격 은퇴를 선언하면서 2018년 39지구 연방 하원의원에 도전했다. 20년 넘게 로이스 의원의 보과관으로 일하며 정치적 기반을 다졌던 고향과도 같은 39지구에서 사실상 바통을 이어받아 연방 하원으로 진로를 바꿨고, 2018년 6월 예비선거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해 결선에 올랐다.
2018년 결선 당시 영 김은 개표 당일 투표함 개표에서 상대 후보를 크게 앞서며 거의 당선이 확실시됐었다. 하지만 뒤늦게 개표된 우편투표로 인해 판세가 뒤집히며 안타까운 패배를 인정해야만 했다. 쓰라린 역전패를 경험한 영 김은 재도전을 앞두고 고뇌가 깊었으나 당 차원의 권유와 한인사회의 뜨거운 격려로 용기를 내 올해 39지구에서 길 시스네로스 의원을 상대로 리매치에 나섰고 이번에는 당당히 승리를 일궈냈다.
■정치 철학은
영 김 당선자는 이번 연방하원 선거에 도전하면서 “수 십 년간 로이스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며 몸으로 직접 부딪혀 깨달은 점은 정치는 폼을 잡는 일이 아니고 주민과 국가를 위해 봉사하는 자리라는 것”이라며, “습득한 경험들을 토대로 지역사회와 미국, 또 한국, 동아시아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힌 바 있다.
김 당선자는 선거 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민 문제는 한인 커뮤니티를 비롯해 이민자로 구성된 미국의 여러 인종 커뮤니티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라면서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므로 이민 정책은 기본적으로 공정성, 인권, 안보를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향후 김 당선자가 연방의회에서 이민 관련 정책에 힘을 쏟을 것으로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어 김 당선자는 “국경에 아무나 담 넘어 들어와 불법 체류 문제가 확산되고 안전 문제로 위협받지 않도록 확실한 국경 관리도 필수”라고 덧붙이며 “이민 절차를 더 수월하게 하고 다카 수혜자들처럼 부모를 따라와 거의 평생 미국에 산 사람들은 합법적으로 미국에 체류할 수 있게 해주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방의회 의원이지만 거시적인 정책 뿐만 아니라 지역구와 한인 커뮤니티 등 현안에 대해서도 꾸준한 관심을 가지겠다는 의지를 보인 김 당선자는 미국 내 한인 여성 이민자로서 새로운 역사를 써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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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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