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세포가 말라 연애를 잘 하지 못하는 여자를 일컫는 ‘건어물녀’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나는 다행히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지만, 그래도 건어물녀에 가까운 감성을 지녔다고 생각했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애틋한 사랑이나 이별의 감정들이 별로 공감이 되지 않아 로맨틱 드라마는 시작도 않는다. 부부싸움을 한 친구의 하소연에 공감과 위로보다는 시시비비를 가리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더 쉬웠다. 이토록 바싹 마른 가을 낙엽 같은 감성 덕에 주변 사람들에게 넘치게 사랑을 주지도 못하지만, 미움도 화도 별로 없어 꽤나 평온한 감정선을 유지하면서 살고 있었다.
그러던 나에게 코로나로 인해 집 안에만 꽁꽁 갇혀 지내야 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강의를 겸해야 하는 상황 가운데 엄마 껌딱지가 되어버린 어린 아이들을 밤낮 돌봐야 했고, 새벽에도 몇 번이고 깨서 울어대는 아이들과 함께 베개로 입을 틀어막고 울부짖는 밤도 잦아졌다. 남편도 나름의 역할을 한다고 애쓰고 있음을 알았지만, 하루 하루 지칠 대로 지친 체력과 정신력에 내 안에 알 수 없는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 분노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던 어느 날, 아기 엄마들 몇이 모여 육아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터놓으며 육아 우울증과 스트레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 짧은 영상을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면서 내 안에 치솟던 그 분노의 마음이 눈 녹듯 사그라드는 매우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래, 나만 힘든 거 아니지. 내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니지. 이게 원래 힘든 거지.’ 단순히 나의 힘든 상황을 누군가가 이해하고 공감해주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가 너무 큰 위로가 되었고, 그 순간 나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남편의 공감과 인정의 한마디였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남편에게 ‘많이 힘들지?’ ‘일하며 아이들 보느라 수고가 많아’ 이런 표현을 숙제처럼 해달라고 요구했다.
일면식도 없는 이들의 대화와 엎드려 절받기식 남편의 한마디에도 내 안의 가득한 화가 누그러지고 잠시나마 힘이 나는 걸 보니, 꼭 타인의 아픔과 어려움이 깊이 절감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많이 힘들지’ 알아주는 그 공감의 한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주변의 소중한 이들의 힘든 마음을 더 돌아보고 위로하지 못했던 나를 많이 반성하게 되었다.
<송현아 (산호세주립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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